씁쓸한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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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선생님들에게 스승의 날은 목의 가시 같은 날이다. 시류(時流) 따라 이러저러하다더니,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고 씁쓸한 날이 돼 버렸다.

김영란법을 들여다보며 깜짝 놀란다. 소소한 음료수 한 병이나 개인적으로 선물하는 카네이션도 금지돼 있잖은가. 그러면서 학생들이 직접 쓴 편지나 공개적으로 여러 명의 대표로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 주는 것은 허용한다고 돼 있다. 그게 청탁금지법인 걸 모르지 않지만, 참 비현실적이다. 악법도 법이니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토 하날 달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학생으로서 스승의 날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담아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는 것도 안된다니. 교권을 존중하고 스승 공경의 사회 풍토를 조성해 교원의 사기를 북돋는다고 특정한 날 아닌가. 적어도 선생님들에게 교직의 보람과 가르치는 기쁨을 안겨 줘야 온당하다. 꽃 한 송이마저 학생 대표의 손이라야 한다니, 입법한 사람들은 얼마나 허물없이 청렴했기에 이런 법을 만들었을까. 마음자리가 스산하고 혼란스럽다.

인사청문회에 나앉는 후보자들은 너나없이 흠집투성이라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위장 전·출입, 부동산 투기 의혹, 이권 개입, 특혜, 세금 체납·탈루, 음주운전. 자리에 앉자마자 바싹 자세를 낮춰 엎드려가며 한다는 소리가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 자들을 장관 자리에 앉혀놓는다. 윗물이 흐려도 너무 흐리다.

한데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꽃바구니는커녕 꽃 한 송이 달아드리는 것도 법으로 금하고 있으니, 이렇게 야박하고 불공정할 수가 있나. 2016년 입법 후 과연 법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국민은 속속들이 알고 있다. 사법부의 수장부터 솔선수범해 법대로 다스려야 영이 선다는 것을.

나는 교단에서 44년을 가르쳤다. 교직은 학부모로부터 뇌물 받아 부나 축적하는 잡스러운 직종이 아니다. 자를 들이대려면 적정·명확해야 한다. 서울 같은 떼부자들이 사는 동네면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지, 스승에게 꽃 한 송이 달아드리는 것까지 금지하는 건 맹랑하다. 그럴 거면 왜 스승의 날을 정했는가. 앞뒤 이가 맞지 않으니 발상부터 치기(稚氣).

<스승의 은혜>, 많이 부르는 노래를 입에 올린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나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옷깃을 살피게 하는 것은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란 대목이다. 아니, 그런 어버이 같은 분에게, 정해진 날에 꽃 한 송이도 안된다니. 사람 사는 세상이 어이없고 우습잖은가.

교원들은 술을 마셔도 술값을 똑같이 나눠 갚는다. 그 오랜 관행이 왜말로 와리깡이다. 가령 궁색해 부대껴도 외곬으로 교단을 지키는 마음 결 곧은 결곡한 사람들이다. 사회가 삭막하다지만 사제 간은 정겹고 훈훈하다. 그렇게 훈육한다.

스승의 날이 있어 외려 선생님들이 부담된다면 이야말로 이율배반, 전에 없던 풍속도다. 스승의 날엔 학교가 거의 쉰다고 한다. 텅 빈 교실, 텅 빈 운동장이 을씨년스럽겠다. 스승의 날이 선생님들에게 위안을 안겨주기커녕 스트레스를 받는 이상한 날이 돼 있으니, 참으로 씁쓸하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학교는 다시 연다. 선생님들은 하늘을 우러러 다짐하리라. ‘진정한 스승은 말로, 글로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의 삶으로 가르친다.’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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