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한 변명, 아름다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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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근본을 벗어날 수가 없는가 보다.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전쟁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끝내 한스러웠을까? 물론 최대 휘발유 산유국인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우겠다는 경제논리도 이유가 된다고 하지만, 온 세상이 전쟁을 반대하는데 유독 그가 전쟁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알지도 못하고 전혀 관계도 없는 지구 저편의 부시라는 사람 때문에 휘발류 값은 오르고 들려오는 뉴스로 날마다 기분이 언짢다. 나야 그 정도이지만 이라크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부시가 끝까지 전쟁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 부시와 무관하지 않을 것도 같다.

그것이 말이 되든 말든 자기는 자기대로 정의의 이름을 빌어 변명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버지 부시의 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도 같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식이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식은 결코 부모가 만들어주는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자식이 당당하고 잘 되기를 바라면 내가 먼저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자식은 나를 보고 있다. 자식에게 효도를 받으려면 내가 먼저 나의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한다.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여야 한다. 제 잘못은 모르고 괜히 남만 원망하면 자기의 한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괜히 원망 받는 남으로부터 더 큰 원망을 되돌려 받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또 다른 남에게 비굴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되어,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뿐이다.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가 일단 해버린 행동이나 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변명하는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 같지만 옳지 않을 때는 사실은 속으로 그 사람을 비웃고 있다.

그 사람은 더욱 자기의 잘못을 덮으려고 주위의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설명하지만 갈수록 꼬이기만 한다. 그러나 단 한 번만 깨끗이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갈수록 꼬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혹시 나의 거짓을 알아버릴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수 있다.

또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다시는 잘못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합리화하는 것은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따라서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을 묻지 말아야 하며,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또 다시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 감시하고, 심하면 단죄하여야 정의가 바로 설 것이다.

아버지가 애국자인데 자식이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 이중국적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바빠서 자식의 일을 모르고 방치한다 하더라도 자식은 아버지를 전혀 닮지 않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이 이중국적을 갖는다든지 군 면제를 받는 것과 같은 문제는 실수일 수도, 모를 수도 없다. 평소 그들의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단지 인사권자의 눈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잘못이 있으면 당장에 고쳐야 한다.

양심과는 관계없는 그래서 단지 능력만 있으면 되는 자리는 없다. 그저 묻혀서 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수많은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는 일이 무엇이든 먼저 도덕적이어야 한다. 능력은 있지만, 양심이 없는 사람은 더 큰 자리에 앉으면 전쟁광이 될 수도, 살인마가 될 수도 있다.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는 당당함도 없이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단죄하여야 한다. 그것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며, 그것이 인사권자의 할 일이다.

우리처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오늘도 내일도 용서하고 기다려보아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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