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생존권의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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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방영되는 전쟁 뉴스를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을 때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인간의 4대 자유를 제창하면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천명한 바 있다.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생존권이라 한다면 전쟁 없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평화적 생존권’이라 한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전쟁 없이 평화만 유지하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국가간 전쟁이 아니어도 민족간 갈등이 있어서 ‘인종 청소’라는 명분으로 살육을 일삼는 경우도 있었고, 특정 세력의 집권을 위하여 무차별 살육한 경우도 있었다. 캄보디아의 푸놈펜 ‘뚜올슬랭’ 박물관에는 ‘크메르 루즈’에 의해 학살된 8000여 명의 해골로 조성된 탑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폴 포트’가 집권하면서 사회의 체제를 바꾸기 위하여 지식인, 관리, 대학생, 안경 쓴 사람, 손이 곱다는 이유 등으로 기존의 지식인과 사회적 지도층을 철부지 소년을 동원하여 1만7000여 명을 무차별 학살한 ‘킬링 필드’의 흔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백성들은 당하기만 했다. 조선 중기 임진년에 외적이 7년간이나 우리 국토를 유린하는 바람에 선조 임금은 왕궁을 버리고 신의주로 몽진해야 했으며, 병자호란 때는 인조대왕이 피란지 남한산성에서 왕세자와 함께 청나라 장수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삼전도의 비극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 말에는 고종 비인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왜인 낭인에게 무참히 시해 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끝내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 36년간 전쟁 아닌 전쟁을 겪으면서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이 유린됐다.

1950년에는 정부 수립 후 국방을 채 가다듬지 못한 사이 외세를 등에 업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낙동강 이남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를 유린했다. 그 때의 상흔은 지금도 아물지 않았는데 국군은 있으되 주적이 애매하여 평화적 생존권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이유가 어떻든간에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변의 이라크 국민이 미.영 연합군의 진주로 기아와 병마와 공포 속에 지내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전쟁의 비극을 실감하게 한다.

아무리 평화를 유지하려 해도 강대국이 쳐들어오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국제사회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힘이 없으면 당하게 마련이고 평화적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힘이 없이는 평화를 지킬 방법니 없는 것인가.
침략할 것으로 여겨지는 강국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치고 비위를 맞추며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여러 나라가 연대한 협정을 통하여 외부의 침입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의 정책으로 청나라를 상주국으로 하여 조공을 바치고 비위를 맞추며 청나라 사신이 올 때면 영은문(迎恩門)에 나아가 융숭한 대접을 하면서 평화를 유지한 것이고, 후자의 예로는 2차대전 이후에 국가간에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주적의 침입을 막았던 예로 볼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자력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다른 나라와 협정을 통하여 힘을 키우고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함락을 통하여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와 함께 폭정과 암흑의 후세인 시대가 끝나는 이라크 국민도 ‘평화적 생존권’을 누릴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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