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 의사의 외로운 투쟁
어느 독일인 의사의 외로운 투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지난 4월 30일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가 주최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초청강연이 있었다. 연사로 초청된 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Norbert Vollertsen)씨였다. 그 분을 공항에서 뵈었을 때 느낀 첫인상은 한마디로 대단히 정력적이고 늘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계에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리기 위해 오늘은 서울, 내일은 일본 도쿄, 모레는 미국 워싱턴 등 지구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한시도 쉴 틈 없이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폴러첸씨의 강연이 여타 북한 전문가나 탈북자들의 강연과 다른 점은 북한 지방의 실상을 생생히 촬영한 비디오를 가지고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가 북한 지방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던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캅 아나무어(Cap Anamur)의 일원으로 1999년 7월 북한에서 의료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화상을 크게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주저없이 자신의 피부를 갖고 있던 메스로 도려내어 그 환자에게 기증했다. 이 일이 북한의 미디어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면서 폴러첸씨는 북한의 유명 인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정의 메달과 친선훈장,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폴러첸씨는 지방 곳곳을 제지당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북한의 전역을 자세히 보고 생생한 모습을 비디오나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비디오는 우리가 ‘남북의 창’ 등 한국의 방송에서 보여주는 북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시청하는 북한의 화면은 북한의 방송을 녹화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거의 평양의 모습 등 북한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가 많다.

평양으로부터 50㎞ 북쪽에 위치한 평성지역 시골병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병원이라고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처방할 약은 물론이고 전기, 수도, 난방시설 등이 안돼 있어 환자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영양 실조로 거의 굶어 죽게 된 16~17세 된 아이들의 모습은 7~8세 정도의 어린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운 비참한 현실 앞에서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폴러첸씨는 이러한 북한의 기아난과 부족한 의료시설이 천연 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강조한다. 국제기구나 여타 국가들로부터 막대한 식량 원조와 의료 지원을 받고 있는 북한이 그런 구호품을 지역 각 곳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외국 의약품은 평양 등의 고급당 간부들이 사용하는 병원에서 전부 쓰인다고 한다. 평양에는 어느 유럽 국가들의 병원 못지않은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병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북한 당국에 지적하고 외국의 원조품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줘야 한다고 역설하다가 폴러첸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2000년 12월 말에 추방당하고 말았다.

추방 후에 그는 북한의 인권 참상을 세계 언론에 알리고, 중국 등지에서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무사히 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떠나 의사로서 차마 북한 사람들의 참상을 눈감을 수 없다고 했다. 국내 인권문제에 매우 민감한 한국 정부와 진보적인 사람들이 왜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탄했다. 좌파운동가로 자처하는 자신이 한국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우익보수반동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북한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 결의안에 불참하는 등 북한의 인권문제 거론을 꺼리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런 말을 외국인에게서 들었을 때 낯이 뜨거워졌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