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권(赦免權)의 내재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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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경축일이 있을 때면 국민화합과 새출발을 도모하기 위해 사면령이 내려졌다.
이번에도 8.15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광범위한 대상에 걸쳐 두루 사면(赦免)이 단행될 것이다.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놓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시비를 가리는 잡음이 일고 있다. 한마디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무차별적인 사면권 행사에 대해 적절한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면권(赦免權)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합리적인 기준도 없이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자의적(恣意的)인 재량권(裁量權)은 아니다.
내재적인 한계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면(amnesty)은 어원적으로 보면 원래 ‘망각(忘却)’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mnestia’에서 유래한다. 망각은 범법자가 죄값을 치르고 피해자의 원한이 풀어진 다음에야 나올 수 있는 의식이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행해졌던 사면의 실상을 보면, 속죄(贖罪)와 신원(伸寃)과는 거리가 멀다. 외환위기를 유발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던 각종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과 전직 은행장들, 역사의 물줄기를 왜곡시켰던 군사쿠데타의 주역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관련자들, 부정선거 사범 등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인사들에게까지도 은전(恩典)이 주어졌다. 국민의 가슴 속에는 앙금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당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 인사들에 대해 정략적으로 사면과 복권을 단행했다. 명분으로 내세우는 국민화합의 논리는 어설플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의감마저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국민을 상전으로 모시겠다던 국민의 정부도 국민의 정서를 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법 운용의 측면에서도 전근대성(前近代性)을 드러내고 있다. 선진국에도 사면제도는 있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모범수(模範囚)에 대해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정치인의 부정부패는 일반사범보다 더욱 엄격하게 다뤄지며, 적어도 정략적 의미의 사면은 없다. 특히 역사의 왜곡과 반민족적인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하는 법이 없다.
그렇지 못한 우리 현실은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역사와 정의를 운위하는 것은 차마 웃지 못할 코미디이다. 차제에 사면권 행사의 적정성을 기하기 위해 사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법조계 일각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헌법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두고 있지 않는 미국에서도 형(刑)이 확정되거나 형의 집행이 종료된 뒤로부터 5년 이내에는 신청자격이 허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이러한 최소한의 제약조차도 받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힘센 사람들 치고 형기(刑期)를 다 채우는 자는 별로 없고 언제 잡혀 들어갔나 싶을 정도로 빨리 나온다. 무엇 때문에 잡아넣었는지를 의심케 한다. 사면권의 자의적인 행사는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면권을 정략적 차원에서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먼저 죄상(罪狀)을 가려 사면의 대상을 엄격히 선별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기틀을 좀먹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형기중에 사면을 극히 제한함으로써 만연된 부정부패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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