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의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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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의 ‘집안 분쟁 판결’은 기발했다.
두 하녀가 대판 싸움을 벌인 끝에 시간차를 두고 찾아와 자기만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한 황 정승의 판결은 두 사람에게 똑 같았다. “네 말이 옳다. 놔 둬라. 내 그년을 혼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보다 못한 부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일국의 재상이나 된 어른이 하녀들의 싸움에 시비곡직을 분명히 가려 줘야지, 네가 옳다. 그리고 또 너도 옳다는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었다. 부인에 대해서도 황 정승의 판결은 마찬가지였다. “그대의 말도 옳소”였다.
오성(鰲城) 이항복의 어렸을 때 주먹도 이웃 간의 분쟁을 쉽게 해결했다. 오성의 집 감나무 가지가 권률의 집으로 넘어가 있었다. 이 가지에 달린 감은 모두 권률네의 차지였다. 화가 난 어린 오성이 권률의 방을 찾아가 다짜고짜 주먹을 문안으로 불쑥 들이댔다. “이 주먹이 도대체 누구 것이요.” 물론, 권률은 “네 주먹”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 방에 들어 온 주먹이니 내 주먹이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판결이 난 후 권률네 집으로 넘어간 가지의 감도 오성네의 차지가 되었다.
1500년대 조선시대 때 있었던 오성네와 권률네의 감나무 시비와 비슷한 일이 최근 서귀포에서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모씨의 자두나무 가지가 김모씨의 과수원으로 넘어 온 게 발단이다. 김씨가 자기 땅으로 뻗은 이씨네의 자두나무 가지를 교통에 지장이 있다며 임의대로 잘라버린 것이다. 이 문제가 법정으로 번져 가지를 자른 피고 김씨는 약식명령에서 3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원고 이씨는 이에 불복,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인데, 제주지법은 이에 대해 “피고의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인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나 그러기에는 가혹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선고를 유예했다는 소식이다.
법대로 하자는 데야 뭐라 하겠는가마는 나뭇가지를 둘러싼 분쟁쯤이야 오성의 주먹처럼, 권률처럼, 또 황희처럼, 유머.익살.풍자, 아니 해학적으로 당사자끼리 풀 수는 없는 것일까. 서로 쓴 소주라도 나누며 속을 털어 놓으면 잘린 나뭇가지가 계기가 되어 더 친해질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아마 법에 호소하다보니 원.피고 간 남은 것은 앙금뿐일 터. “집 이웃, 밭 이웃”…. 밭 이웃도 집 이웃처럼 사이 좋게 지내라는 옛 가르침이 새삼 그리워지는 요즘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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