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기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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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이 요즘처럼 다양하고도 격한 감정을 경험한 때가 근래엔 없었다.

2년 전 월드컵 때도 국민이 하나 된 흥분과 감동은 있었지만 이번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하나 된 충격이었다. 그것은 또한 분노로 표출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혼란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불신과 실망 등을 그대로 쏟아내 최근 정치권 판도를 뒤흔드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또 부메랑이 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5일 전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간 그날 12일 국회는 정말 대단했다.

사상 초유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 처리과정은 어떠했는가. 욕설이 오가고, 몸싸움을 하고, 끌려가고, 울고 불고, 박수를 치고, 명패가 날아가고….

세계에 볼거리를 제공한, TV를 통해 생생히 방영된 그때의 탄핵처리 과정은 모든 국민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심지어 나라가 결딴 나는 줄 알았다.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살이 떨린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한 마디로 국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오랜 관행 탓으로 보인다.

즉, 국민의 이성보다는 감정과 감성에 기대는 것이 표의 응집력과 폭발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에 불을 지피는 것 등이 그것이다. 불행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이러니 정치판은 피아(彼我)의 구분만 있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살피면,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으로선 사상 초유의 일인만큼 그 절차와 명분, 그리고 탄핵사유가 분명했어야 했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 상황과는 달리 대통령도 잘못을 하면 언제든지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완성됐노라고 각별한 의미마저 부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정부패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상대방의 흠집만을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압박하는 단골메뉴로 툭하면 탄핵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느닷없이 탄핵안을 발의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 반대의사를 외면하고, 표결을 강행을 했다. 국민은 총선을 앞둔 당리당략적인 탄핵안 처리로 받아들이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열린우리당의 모습도 탐탁치 않다.

국회 본회의장에선 쿠데타라며 눈물을 뿌리고, 무릎을 꿇고, 서로를 껴안으며 억울함을 표현했다. 이후 ‘상복’과 ‘검은 넥타이’로 상징된 심각한 제스처로 국민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당의 행보는 어딘지 모르게 무언인가 빠진, 어색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행동에 앞서 탄핵을 피해보려는 노력이 절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당의 뒤늦은 평가처럼 그것이 의회 쿠데타라면 사전에 예방했어야 했다. 따라서 예고된 ‘심각한 상황의 쿠데타’를 방관해 국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보게 했다는 비난을 그들은 감수해야 한다.

탄핵 가결 하루 전인 지난 11일 대통령의 기자회견도 예방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강경한 입장이었다. 그러니 대통령과 우리당은 정략적인 차원에서 야당의 탄핵 추진을 적어도 방관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서로 정도의 차는 있지만 여야 정치권이 어느 정도 의도해 만든 탄핵정국으로 국민 여론은 요동치고 있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은 여론의 뭇매로 벌집이 됐고, 여당은 반사이익으로 연일 상한가다.

국민 감정에 따라 여야의 희비가 크게 갈린 셈이다.

이 과정에 국민도 괴롭다. 어려운 경제로 힘든데, 이웃과 얼굴마저 붉힐 상황에 놓였다. 탄핵정국이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또한 상대방을 두 눈 부릅떠 노려볼 것을 사실상 요구하고 있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권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치 이벤트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의 폭을 더욱 좁힐지 모른다. 그러니 냉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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