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심쩍은 APEC 개최도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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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이 상식을 벗어난 결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결과를 놓고 선정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의구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선정과정과 선정결과는 조화롭게 연결되지 않는다. 출발은 투명했으나 끝맺음은 ‘밀실’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시작은 산뜻했다. 제주와 서울, 부산이 유치신청을 한 가운데 APEC개최도시선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7일 1차회의를 열고 8가지 객관적인 선정기준을 마련했다. 선정과정에 개입될 수 있는 ‘정치적 입김’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환영받을 만한 조치였다.

숙박시설, 공항여건, 경호와 교통, 행사운영 능력 등 8개의 평가항목에선 서울이 부산을 압도한 것은 당연했다. 모든 인프라가 앞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체제는 8여 년 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유치 때처럼 제주와 서울로 사실상 좁혀졌다. 장점과 단점이 정확히 대비되는 두 지역이어서 치열한 유치전이 예고됐고, 초반 경쟁에서 제주는 결코 서울에 뒤처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동안의 APEC 정상회의가 휴양도시에서 열렸다는 점, ‘느슨한 포럼’ 형태로 진행되고, 이의 컨셉트가 ‘Retreat(피정)’라는 점 등이 제주 유치 가능성을 높였다.

즉,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자유롭게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는 것이 APEC 정상회의여서 제주가 그 개최장소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던 것이다.

일반 국민들도 대체로 이렇게 생각했다. 네티즌간 공방은 있었지만, 제주의 손을 들어준 네티즌이 훨씬 많았다.

이러한 와중에 갑자기 부산이 서울을 제치고 제주의 경쟁상대로 부각된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 16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항만공사 출범식에서 “APEC 정상회의는 가능하면 지방도시에서 개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서울은 사실상 유치경쟁에서 탈락했고, 대신 부산이 뛰어올라 제주와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당시 제주지역에선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 선물을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서울보다 평가점수가 낮을 것으로 예상된 부산과 2파전 양상으로 유치전이 전개된 것에는 대체로 희망적이었다.

게다가 선정위에서 슬쩍슬쩍 흘러 나오는 평가도 제주를 흡족케 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선정위의 결정이 연기되고, 이후 부산시와 부산지역 정치권의 총공세가 이어지면서 제주의 입지는 좁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제주는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26일 선정위의 표결을 앞두고 정부측 일부 위원들이 “국가균형발전이 시대적 소명이다”, “제주는 섬이어서 경호상 어려움이 있다”고 위원들에게 밝혀 정부의 부산 지지 입장을 사실상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표결 대결에서 팽팽하던 분위기가 부산 대세론으로 급속히 기울었다는 후문이다.

공정한 심사를 감시해야 할 정부 스스로가 오히려 선정위원들에게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의혹은 ‘노심(대통령의 마음)에 의한 부산 결정’일 가능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게다가 제주도민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논리로 부산 유치 타당성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위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는 명분의 ‘대도시론’과 제주가 섬이어서 경호상 어려움이 있다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변명 내지 분석으로 부산 유치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가 유치활동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부각시켜온 경호상의 안전문제가 선정위에서는 탈락의 원인으로 둔갑한 것이다.

때문에 도민들은 선정위의 심사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제주에게 잘못이 있다면 ‘도세가 약한 것’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 심사 결과부터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미심쩍음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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