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척도는 지위에 달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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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킬 때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용어를 인용한다.

공화정 이전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이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전쟁비용을 부담했던 솔선수범의 미덕을 일컬음이다.

이는 서구의 근대사회까지 이어져와 조직과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돼 왔다.

사회지도층의 실천적 언행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는 한 조직 또는 사회의 번성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달 5일 제주도지사와 제주시장, 지방의원을 뽑는 재.보궐선거전이 막이 오르면서 다시금 제주사회를 달구고 있다.

지역민을 대표해 지역사회에 헌신 봉사하겠다고 주창하던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본연의 자리를 박차고 이제 ‘또 한 번의 기회’를 달라고 한다.

저마다 ‘도민 대통합’, ‘경제회생’, ‘복리증진’ 등을 기치로 내걸고 자신만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강조하며 출사표를 내던졌다.

하지만 ‘봉사의 길’이 꼭 지위 상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지역발전의 적임자니,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변인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후보자 상당수는 개인의 정치적 포부나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에 의해 지난 6.13 지방선거 때 맺은 유권자와의 약속과 계약기간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보다 높은 자리’만을 지향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데 기인한다.

차상위급 기관장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비어버린 자리를 채우기 위해 예정에도 없던 연쇄적인 선거과정은 혈세의 낭비와 주민 혼선 등을 지역유권자에게 고스란히 떠맡긴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자치단체장의 중도 사퇴는 지방정책의 일관성을 훼손을 한다는 측면에서 큰 손실이고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공직사회의 동요와 갈등마저 초래해 지방자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제주지역만이 아니다.

부산과 경남, 제주와 전남의 광역단체장 재.보궐선거를 비롯해 18개 지역의 기초단체장과 35개 지역의 광역의원 재.보궐선거가 당 대 당 구도로 경합이 이뤄지고 있다.

기초의원 선거까지 합치면 10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별도의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양상을 띠며 그야말로 ‘선거홍수’에 휩쓸리고 있는 점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4년간의 봉사를 위임한 마당에 중도 사퇴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중앙정치 및 관치문화 청산’과 풀뿌리 민주주의 토착화라는 지방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각 후보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강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5월 지방자치단체장의 출마 제한이 ‘보통선거의 원칙 위반 및 피선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재.보궐선거의 경우 기초단체는 5억~10억원, 광역단체는 100억원 안팎의 막대한 지방재정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중도 사퇴자 본인과 소속 정당 등이 공동으로 책임지는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단체장들이 자의적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주민소환제 등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선거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올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설사 출마 제한 또는 사퇴 금지 등을 법규정으로 정하지 않더라도 상식과 원칙, 도덕적 책무가 지켜지는 정치를 원하는 지역 유권자들의 뜻을 헤아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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