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16과 최연소 제주도지사 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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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개발 50년의 서막을 열다
신년 기획연재 제12대 제주도지사 김영관 회고록
▲ 김영관 제12대 제주도지사.
제주일보는 2011년 새해를 맞아 1월1일자부터 제12대 제주도지사(1961년 5월24일-1963년 12월 18일)를 역임했던 김영관 지사가 재임시절 추진했던 제주도개발에 얽힌 생생한 일화를 담은 회고록을 기획 연재한다.

김 지사는 현역군인인 해군 준장의 신분이자 역대 최연소인 36세의 나이로 5.16직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권유로 제주도지사에 부임한 후 2년 7개월여 간 제주도와 육지간 항공.해운 정기 연계교통노선을 확보한 것을 시작으로 제주-서귀포간 횡단도로 개설포장, 도심지 도로포장, 재일교포 투자유치, 관광활성화, 감귤산업 육성, 제주의 문화육성, 지하수개발과 상수도 보급,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구사업 등 제주개발 50년 대장정의 서막을 열어 제친 장본인이다.

제주도에 길의 혁명, 물의 혁명, 산업혁명을 추진한 김 지사는 이후 해군에 원대 복귀해 해군참모총장직에 올랐고 퇴역 후 주 월남 마지막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 지사는 86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제주도지사로서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제주도 발전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영원한 제주인이다.

이번에 연재되는 김 지사의 회고록을 통해 제주도가 그동안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전을 이어왔으며, 김 지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해 온 제주발전을 이끌어 온 주역들의 면모와 제주도민이 저력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① 5.16과 제주도지사 발령
나는 1961년 5.16 당시 해군대 총장(준장)으로 있다가 서울에 있는 국방연구원(현 국방대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4.19가 났던 그 전 해 여름 나는 10개월 과정의 국방연구원에 입교했었고 이제 교육을 다 마치고 수료식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군 인사만 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당시 정국이 소란스러운 것에 대해 대북관계와 안보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군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던 차에 육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그래서 나는 5.16 소식을 전해준 국방연구원 동기생에게 “군사혁명, 육군의 누구냐?”고 물었다. 좋은 의미에서 물음은 아니었고 군사혁명을 일으킬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부정적 의미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국방연구원 동기생 중 많은 이들이 바로 5.16의 주체세력으로 참가 있던 차였다.

나의 물음에 바로 ‘박정희 소장’이라는 답이 나왔고 나는 속으로 ‘안심이다’라고 되새기며 군사정변에 대한 내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 분 같으면.....’

박정희 장군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군인으로서 가장 존경받고 신망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장군과의 인연
나와 박정희 장군과의 인연은 5.16이 나던 해로부터 3년 전인 1958년 내가 진해 한국함대(현재 함대사령부) 참모장(대령)으로 있었을 때다.

그때 박정희 장군은 준장으로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 학생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박 장군의 가장 가까운 후배이자 나하고 친한 강태민 장군도 같이 교육을 받았다.

내가 해군사관학교를 1기로 졸업하고 훈육관으로 임명됐을 때 강태민 장군은 해사 생도대장을 하고 있어서 가까이 모시고 있던 선배였다.

그 후 강태민 장군은 육군으로 전과했지만 나하고는 연락도 자주하던 차에 박정희 장군과 함께 진해 육군대학에 교육받으러 내가 있던 진해로 내려왔던 것이다.

강 장군은 진해에 내려오자마자 함대 참모장실로 찾아와 “친형님 이상으로 모시는 선배하고 같이 왔는데 박정희 장군이라고.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알지. 김 대령에게 많은 신세를 질 거야 특히 박 장군하고 말이야”라며 나와 박정희 장군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그 후 나는 두 분에게 식사대접도 하고 술대접도 하면서 같이 친하게 어울려 다녔다.

여름이면 인근 섬인 저도로 박 장군, 강 장군과 나는 아이들 모두 데리고 가족끼리 보트를 타고 해수욕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또 나는 박 장군 가족과 강 장군 가족을 가끔씩 내 관사로 초청해 내 아내가 준비한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육영수 여사는 육군 장군 부인 하면 굉장히 화려하게 봤는데 검소하고 소박했다.

내 아내는 육 여사를 보고 ‘나 보다 더 허술하게 생활 하신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기품이 있었다.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에 많은 장군들이 다녀가고 나와 인연을 맺은 경우도 많아 전화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지만 박 장군은 인사하는 방법도 다른 장군들과는 달랐다.

박 장군은 직접 서신으로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내 아내에게 사모님이라고 호칭하며 맛있는 요리 대접을 잘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면 내 아내는 자기에게 사모님이라고 한다며 무척 좋아했고 그 서신은 아직도 잘 보관중이다. 그 때는 박 장군이 5.16을 일으킬 것이라고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 후 박 장군은 일선 지구로 갔다가 다시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왔고 나는 진해 한국함대에 그대로 있으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강태민 장군이 암으로 사망했는데 장례위원장이 바로 박정희 소장이었고 장례위원들이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대부분 5.16 주체세력들이었다.

강 장군의 장례식은 5.16을 바로 앞둔 며칠 전이었고 나는 그때 5.16에 참여했던 군 세력을 나도 모르게 전부 다 만난 셈이었다.

5.16혁명최고위원회에 참여한 최고위원 중 김윤근 장군은 해군사관학교 동기생이고, 김동하 장군은 해군 선배이고, 송찬호 윤태일 장군은 국방연구원 동기생이고, 이주일 최고위원회 부의장은 그 이전부터 인연을 맺던 사이였다. 또 혁명정부의 한신 내무장관 정래혁 상공장관 등은 국방연구원 동기생이었을 정도로 많은 지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나와 5.16 주체세력과의 인연은 나중에 내가 제주도지사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 1961년 9월 8일 내도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앞줄 왼쪽 넷째)과 김영관 제주도지사(앞줄 왼쪽 셋째)가 건입동 충혼묘지를 방문해 헌화하고 참배하고 있다.


▲제주도지사 발령
그런데 제주도는 사단이 없고 해군기지사령관이 있었지만 장군이 아니라 대령이어서 보직이 없는 장성중에서 적임자를 물색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해군준장이던 내가 국방연구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보직대기중인 것을 알고 나를 안성맞춤으로 보고 제주도지사에 발령을 냈다.

하지만 나는 도지사를 원하지 않았다. 행정경험도 없고 군에 남고 싶었다. 내가 도지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혁명최고위원회에 알고 지내던 모든 이들이 나를 찾았다.

최고위원회 부의장이던 이주일 장군은 나를 만나자더니 보자마자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도지사 자리를 맡아 달라’고 설득했다.

최고위원인 해병대 김동하 장군도 ‘박 장군이 간곡하게 당부 하더라’며 많은 이들이 박 장군의 심중을 전하자 나는 결국 싫다 좋다 하기 전에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제주도지사로 정식 발령 난 시기는 국방연구원 교육과정을 졸업하기도 전인 5.16이후 8일 만인 1961년 5월 24일이었다.

▲나와 제주도
내 고향 김화군은 일제 강점기 때 민족의식이 높고 반일 사상이 센 곳이어서 다른 군 지역은 경찰서가 한 곳이었지만 김화군은 경찰서가 2곳이나 있을 정도였다.

8.15 해방 직전 나는 서울로 와서 공부를 더하려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해방을 맞았고 서울 종로2가의 YMCA건물 벽에 해군사관학교 1기 생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우연하게 보게 됐다.

해방직후 미군정시대였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해사 모집 광고 중 성적우수자는 미국 유학을 보내준다는 조건이 있어 여기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당시 해군사관학교 1기로 112명이 입교했는데 졸업생은 61명에 불과했다.

제주도와 나의 만남은 4.3사건 전후 507정 정장으로 제주경비를 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제주해협을 경비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있었지만 물과 부식이 떨어지거나 연료를 채우기 위해 제주항에 정박하면서 몇몇 제주사람들과 맺은 인연들이다.

또 1948년 5.10선거를 감시 감독하기 위해 유엔선거관리감시단이 제주를 방문하면서 인연은 이어졌다. 소령이던 내가 901정 정장으로 단장인 유허만 중국 유엔대사(나중에 한국주재대사 역임) 일행을 부산에서 제주도로 직접 모셨다.

그 당시 제주도지사가 임관호 지사였는데 아주 신사였고 잘 대우해준 기억이 난다. 그 때문인지 제주도에 대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고 아주 수준 높은 지사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당시 4.3사건이 발생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5.10선거를 치루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웠을 텐데 내가 받은 제주도의 인상은 전혀 그러지 않고 차분했었다.

그 때 만난 후생병원 오창은 원장과 의사 장시영씨와 의사 김시종씨, 산지파출소장 조재수씨 등이 당시 친하게 지내며 교분을 맺었고 임관호 지사는 도지사관사로 초청해 만나고 제주와의 인연은 이렇게 따뜻하게 시작됐던 셈이다.

이 분들은 내가 이후 도지사 재임하던 중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신 분들이기도 하다.
<구술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제12대 제주도지사 김영관 프로필
-학력
해군사관학교1기졸업
국방연구원(현 국방대학원)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1년수료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원 1년수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뉴저지주 센테너리대 명예문학박사
-경력
해군본부 인사국장 작전국장
해군대총장
제주도지사
해군본부 국수계획국장 해군통제부사령관 함대사령관
제8대 해군참모총장
1969년 4월1일 예편
영남화학사장
주 월남최후대사
민주당 부총재(1987년)
성우회장
해군사관학교교육진흥재단이사장(현)
6.25전쟁 60주년기념사업회 고문(현)
-훈장
근무공로훈장
월남1등명예훈장
월남3등보국훈장
태국왕관최고2등훈장
미국공로훈장
월남2등훈장
중화민국대수운휘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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