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읍면 시찰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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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 지시로 각부처 장관 제주 방문 ‘러시’
비포장길 초도순시 도로문제 해결 다짐 계기
살곳 잃은 4·3 이재민 거처 문제 파악 지시
연륙 교통 불편 직접 체험해 해결 방안 모색
▲ 김영관도지사는 부임 일주일만에 제주도민들의 생활상을 살피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읍면시찰에 나섰다. 사진은 안덕면사무소를 초도순시하고 있는 김지사(왼쪽에서 두번째)와 그 일행.

도지사로 부임해서 일주일만에 나는 제주도민들의 생활상을 살피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읍면시찰에 나섰다.

 

하루는 동쪽을 돌아 서귀포에서 1박하고 2일째는 서쪽을 돌아 제주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제주도 전체가 비포장이어서 참 불편하고 힘든데다가 강행군이어서 비록 젊은 나로서도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읍면시찰을 하면서 제주도내 도로가 열악한 사정임을 제대로 파악하고 어떻게든 이 문제를 임기내에 해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읍면을 순회하면서 긴장된 공직사회와 도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민들을 대했다.

 

5·16이 발생하고 혁명정부가 수립되면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현역 군인이자 도지사인 내가 읍면지역 초도순시에 나서자 공무원들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부윤경 서귀읍장은 지역현안에 대한 문제를 보고하면서 자신의 의견도 활기차기 제기해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초도순시 중에 나는 도청 간부 공무원들에게 서귀포를 가기 위해선 일주도로를 돌아가야만 하는 불편을 덜기 위해 한라산에 횡단도로를 개설해 포장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공무원들은 일주도로 포장이면 몰라도 횡단도로 개설과 동시에 하는 포장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로 제주도는 제주시를 포함해 포장도로가 단 1m도 없는 상황이어서 공무원들의 부정적인 반응과 심정을 이해는 했다.

 

하지만 그동안 중앙정부가 제주도민은 물론 제주도 공무원을 패배주의에 물들도록 철저하게 소외시켜왔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내 마음속으로는 한라산 횡단도로 문제를 반드시 이뤄내야 혁명정부가 다른 정부와 다르구나 하는 점을 도민들에게 알릴 수 있고 제주발전도 앞당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읍면시찰과정에서 나와 혁명정부가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를 하나 확인했었다.

 

이 시점에서 제주도에서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은 바로 4·3당시 조상대대로 살던 중산간 지역 거주지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쫓겨나 도내 해안가를 떠돌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4·3이재민들을 위한 일이었다.

 

이 문제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내게 당부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나는 도청으로 돌아오자마자 전도에 걸쳐 4·3이재민의 현황을 조사해 보고할 것을 지시하고 4·3이재민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함께 파악할 것을 요구했다.

 

읍면 시찰을 마치고 제주도에 대한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자 5·16 이후 발령받은 전국 지방장관 첫 회의가 서울에서 소집됐다.

 

▲ 1958년께 진해 한국함대 참모장(대령)시절의 김영관 도지사. 이 시기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인연을 맺는다.
6월10일 소집된 이 회의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하고 송요찬 내각수반이 주재하는 첫 자리였다.

 

여기서 각 시도지사는 자기 지역에서 살핀 업무와 5·16 및 혁명정부에 대한 여론을 보고전달하고 정부시책에 반영하고 혁명정부의 주요 시책을 하달 받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당시 다른 시도의 시도지사는 전부 그 지역 사단장을 하다가 시도지사직을 겸하는 것이어서 민간인 도지사의 역할에 생소했으나 나는 그들과 달랐다.

 

나는 비록 현역 군인이지만 그 지역 사단장이 아니라 도지사로서 발령받아 민간 지사와 똑 같은 처지에서 도정을 수행하고자 맘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이 회의 역시 혁명정부가 시도지사에게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민간인 도지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조가 있었다.

 

또 혁명정부는 무너진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각 시도별로 재건국민운동조직을 만들어 추진하고 농어촌 고리채 정리, 깡패소탕, 부정부패한 공무원 정리에 나설 것도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혁명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제주지역사회에 해당되는 문제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공무원 정리도 자연스럽게 처리하고자 했다.

 

이 회의를 통해 처음 마주한 혁명정부 장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제주도를 방문하겠다고 나에게 언질을 해왔다.

 

나는 이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혁명정부 장관들에게 제주도와 관련해 무언가 중요하고 특별한 지시를 내렸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박 의장이 나서지 않았다면 장관들이 제주도에 까지 앞다퉈 내려오려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생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방장관회의 참석 후 귀임한지 5일만인 6월22일 한신 내무장관, 장경순 농림부장관, 장덕승 보사부장관이 한꺼번에 같은 날 제주도를 찾은 것이었다.

 

나는 지방장관회의에 참석하는 길을 또 따른 과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으로 삼았다.

 

나는 일부러 제주와 육지와 연결되는 교통연계 실정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일반 도민들이 육지에 나가는 노선대로 따라가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당시 비행기는 아무 때나 탈수도 없었고 비싸서 아무나 탈수도 없는 특별한 교통수단이었지 일반 도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아니었다.

 

다만 배는 매일 운항을 하지 않았지만 도민 대부분이 육지를 왕래할 때 이용하는 보편적인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목포로 가서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는 노선이었다.

 

제주에서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돼서야 서울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제주에서 육지로 나들이 길은 참 불편하고 고생스런 길이었다.

 

이렇게 제주와 서울의 연계교통이 열악하니까 제주도가 소외되고 낙후됐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제주의 열악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굳혔다.

 

나는 전국 지방장관회의 참석하기 직전에 기자회견을 통해 공무원 인사방침을 밝혔다.

 

당시 내가 밝힌 내용은 공무원들의 비위사실을 지적한 투서가 많이 접수됐지만 무기명 투서는 일절 취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음해성 투서를 발본색원하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비위공무원인 경우 적발되기 전에 스스로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실제로 나는 투서를 보지 않았고 문제가 될 만한 사람들은 스스로 그만둬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었다.

 

도지사로 첫 공무원 인사는 내 뜻 보다는 도청 인사담당 부서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다만 제주도경찰국장에 대해선 해군출신이었으면 한다고 중앙정부에 의견을 제시했고 실제 고윤석 해병중령이 부임한 것이 내가 관여한 첫 공무원 인사의 전부였다.

 

당시 총무국장은 사표를 제출한 상태여서 당시 김한준 지방과장과 머리를 맞대 의논하며 첫 인사를 단행했다. 김 과장은 북제주군수를 거쳐 지방과장으로 재직중이었는데 내가 볼 때 내무부 인사팀에서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고 청내에서도 신망이 높았으며 성실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일 잘하는 공무원의 전형이었다.

 

이후 김한준 지방과장은 이듬해 산업개발국장으로 승진해 나와 함께 제주-서귀포 횡단도로 개설포장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6월25일자로 시작된 인사는 중앙정부의 공무원 인사와 맞물리면서 2개월째 이어지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7월 초 공무원 정원의 20% 감축령을 내려 나는 중앙정부와의 외로운 투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제주의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숙정인원 줄어보려고 애썼으나 내무부의 강경방침에 밀려 어쩔수 없이 자진사표의 의원면직 형태로 감축해야 했다.

 

결국 공무원 인사는 8월28일 내부무 지방국 지도과 병사계장이었던 김승우가 제주도청 총무국장으로 발령되면서 일단락됐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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