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복회장 윤경빈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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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KBS에서 92주년 3․1절 기념식을 시청하며 특히 전 광복회장 윤경빈(尹慶彬)지사의 우렁찬 만세 선창 소리를 듣게 되어 그와의 의미 있는 대화를 회상하게 되었다.

 

윤회장은 상해 임정주석 김구선생의 경호대장이었고, 그의 딸이 김대중 대통령의 며느리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컸다고나 할까?

 

그는 대한광복회장으로서 1997년 8월 2일 조천항일기념관 준공식에 참가하여, 그를 모셔 점심때에 나는 횟집에서 광복회 지회장 강성건(姜成健)씨 등과 3․4명이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그는 “전국을 돌아다녀 아는데 군(郡) 규모의 항일기념관 중에서 환경도 좋고 가장 크고 멋있는 건물이다.”고 말했다.

 

신철주 군수 당시 나는 북제주군교육장으로서 기념관 건립에 적극 협력했다는 말을 하며 “본도에도 대한민국 광복군 출신 문덕홍(文德洪)지사께서 김구(金九)주석과 함께 둘이 기념 촬영한 사진이 이 기념관에 소장되고 있으며 그의 묘소는 고향 옹포리 마을 남쪽 큰길가에 잘 모시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중경에서 찍은 사진인데 마치 윤봉길의사와 김구주석이 함께 찍은 사진처럼 귀중한 사료가치로 여겨왔다.

 

나는 “특히 김구 주석의 필적 “민국27년 5월 9일 중경(重慶)에서 ‘臨別’(이별에 임하여)이란 글씨는 퍽 인상적이었습니다.”라고 하니 윤회장은 깜작 놀라 눈을 반짝거리고 나서 “그래 그 사진은 중경에서 내 보는 앞에서 찍은 사진이야! 그는 나의 전임 임정주석 경호대장이었지! 그 사진을 복사하여 나에게 건너 주게나.”하자 즉시 사람을 시켜 이를 이행해 드렸다.

 

나를 보면서 “생각해 보셔요. 1945년 5월 문의사는 100일이나 걸어서 김구선생의 엄명을 지키기 위하여 상해까지 천리 길을 걸었다네, 혈혈단신 숨어 몰래 배를 타고 부산에 잠입, 주석의 지시한 바대로 공작을 했었지.”

 

윤회장과의 친숙함이 더욱 다가와 묻기를 “4․3사건으로 제주도민의 어려움이 대단했지요.” 나는 윤회장이 평남 출신이란 점을 알고 있었기에 “예 그렇습니다. 사건을 진압하여 건국에는 공로가 크나 많은 사람이 살상되고, 당시 제2연대장 함병선(咸秉善)이 진압을 했답니다. 당시 함병선은 경찰국장 홍순봉(洪淳鳳), 서북청년 단장 김재능(金在能)과 함께 3인방이라 하여 무서웠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남 대동군과 평양 출신입니다. 옛날부터 평안도 사람의 기개를 일컬어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당돌하게 그랬더니 “함병선만은 그렇지 않았지요.”하기에 나는 “당시 봉개리 지경의 전투에서 처음 개가하여 대변인가 누가 진언하여 함병선의 함(咸)자와 작전참모 김명의 명(明)자를 넣어 봉개리 마을 이름을 함명리라 명명을 했답니다. 이런 이름은 얼마 안 가서 곧 없어졌습니다.”라고, 말을 해놓고 할 말이 아닌데 나는 후회스러웠다.

 

윤회장은 평안남도 중화군 출신으로 일찍이 평양고보를 졸업한 수재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 재학 중에 일본의 강압에 의해 학병이 되어 중국에 파견되니 장준하(張峻河; 사상계 주간), 김준엽(金俊燁; 고려대 총장) 등과 함께 탈주하여 대한민국 임정이 있는 중경으로 들어가니 백범 김구주석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었다며 대환영을 하자 곧 광복군에 편입되었다. 이들 세 사람도 맹호출림의 기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는 이때 제주 출신 문덕홍과 알게 된 것이다.
문덕홍은 일본에서 항해사로 근무하며 상해로 입항한 기회를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하여 이미 광복군이었다. 김구주석의 연합국과 함께 제주침공을 계회하기 위해 먼저 부산으로 들어가 특수 임무를 부여받아 활동 중 1945년 광복 직전 체포되어 얼마 없이 일본이 항복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9년 47세로 병몰했으나 손자 문영훈(1956년생)은 조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노력 끝에 재(在)프랑스 작가이자 파리 소로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자 힘쓴다는 소식을 나는 2004년 듣고 있었으나 그 이후의 일은 알 수 없다.

 

어떻든 올해 3․1절 경축식에 나는 문덕홍지사를 회상하며 3․1운동이 일어나기 두 달 전에 태어난 윤경빈옹이 그 훨쩍한 키에 93세의 씩씩하고 멋진 모습으로 외치는 만세3창의 선창하는 목청에 그만 나는 너무나 감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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