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제주도민 단합을 위한 문화행정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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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미인·경마 대회 개최해 도민사회 큰 화제
박 의장, 미인대회 입상자 일본 친척 방문 허용
미스탐라 고려진, 동양방송 아나운서로 활동
김 지사, 유명인 초청·스카우트 창단 문화행정
▲ 제1회 탐라미인대회는 1962년 9월 15일 제주도관광협회와 재일제주개발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해 제일극장에서 열렸다. 대회 결과는 고려진(사진 가운데)이 미스탐라, 준 미스에 김덕생(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입상했다. <제주일보 자료사진>

<탐라미인대회와 조랑말 경주>
내가 도지사 재직할 때 이색적인 2개의 행사가 있었는데 제주도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던 탐라미인대회와 경마대회였다.

 

탐라미인대회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이벤트성 행사로 도민사회에 큰 화제가 됐었다. 1962년 들어 제주도에는 많은 문화행사가 기획되고 개최됐는데 5·16 1주년 기념도 있었지만 이를 의식하지 않고 준비되는 대로 치렀다. 도민들의 큰 호응이 많은 문화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데 큰 몫을 했다.

 

탐라미인대회는 제주도는 여다의 섬인데, 여다의 아름다운 미를 전 국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열렸다.

 

당시 미인대회는 서울에서는 열렸지만 지방에서는 열리지 않을 때였다.

 

처음 탐라미인대회를 연다고 했을 때 참여율이 너무 저조했다.

 

제주도에서 처녀 아이들이 수영복 입고 나서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게 뭐냐’는 식의 영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미인대회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입상한 미인에게는 제주도홍보사절단으로 일본 여행을 시켜주고 일본의 친척들을 만나게 해줄 것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자 22명이 참여했고 이중 11명이 예선을 통과했으며 최종 5명이 입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은 서울에서 최정희, 홍천, 조풍연, 김광보, 임직순, 정충량, 손소희, 정비석 등 의사, 문인, 언론인 등이 대거 참여했고 제주도에서도 김동규 재건국민운동본부 차장 등 여럿이 심사했다.

 

1962년 9월15일 제주도관광협회와 재일제주개발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해 제일극장에서 열린 대회 결과는 고려진이 미스탐라, 준 미스에 김덕생, 인기 문태자, 재건 이명순, 관광 하 향이 입상했다.

 

미스탐라에 입상한 고려진은 나중에 동양방송(TBC)의 아나운서로 발탁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나와 내 아내는 도지사 퇴임후 서울에서 생활할 때 방송활동을 하는 고려진을 자주 만나며 가까이 지냈는데 최정숙 신성여고교장이 특별히 아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고려진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때 유명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고 해방후에는 여운형선생의 비서였는데 좌익운동가였으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홍보사절단으로 일본을 방문하려고 미스탐라들의 여권을 신청했더니 고려진 처럼 가족 중 누군가가, 일본의 친척 중 누군가가 좌익활동을 했거나 조총련계열이라고 여권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내무부장관에게 도지사인 내가 약속한 것이고 가족이, 친척이 좌익이거나 조총련계열이라고 차별하면 안 된다. 그들이 조총련계열이 된 것도 본의가 아닌 경우가 많으니 이럴수록 더 보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나는 또 재일동포 가운데 조총련계를 영원히 배척하며 놔둘 것이냐고,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진영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제주출신 고재일씨가 많은 힘을 보탰다. 다행히 박 의장이 그대로 방문하도록 하라고 허락해줘서 미스탐라들에게 내건 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나는 이것을 계기로 제주출신 재일동포 가운데 조총련계에서 탈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실제로 조총련쪽에서는 탈퇴하는 수가 많아져서 큰일 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조랑말 경주대회는 많은 이들이 나도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기꺼이 조랑말을 타고 경주했는데 내가 2등으로 들어왔다. 아마 제주도에서 열린 첫 경마대회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제주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벤트였다.

 

탐라미인대회는 이듬해인 1963년 6월14일에 제일극장에서 제2회로 재건국민운동도지부와 제주도관광협회 공동주최로 또다시 열렸는데 25명이 참가해 미스 탐라(햇님) 이숙영, 준미스탐라(달님)에 오순애가 입상했다.


<유명 문화예술인들 제주홍보 유도>
도지사로 문화행정의 두 번째로 중요시 여긴 것이 될 수 있으면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을 제주도로 초청해 제주도민들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제주도를 찾은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 나서 제주도를 홍보하는 훌륭한 일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소설가인 최정희 여사와 손소희 여사, 김동리씨 등 여러 사람을 초대했는데 나중에 제주도의 홍보대사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최정희 여사는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하고도 친분이 두터워 자주 만나는 사이였는데 육여사에게 제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고 나중에 박정희 의장과 육여사에 들었다.

 

어떤 일은 내가 박 의장에게 보고도 하기 전에 박 의장이 이런 경로를 통해 먼저 알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탐라미인대회만 하더라도 내가 보고하기전에 박 의장께서 먼저 알고는 내게 “미인대회를 했다며, 이미 알고 있어.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도 여성들을 참여시키기 쉽지 않았을텐데 제주도의 여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흐믓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이 같은 유명 문화예술인들을 제주도 초청을 아주 주도적으로 했다.

 

언론을 통한 제주도 홍보도 있지만 유명인사들이 제주도에 왔다가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효과도 높았다.

 

제주도에 온 유명 인사들이 나중에 서울로 올라가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제주도가 이렇다하고 제주에 대해서 얘기해줘야 우리 국민들이 많이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처럼 매체가 다양하지도 않은 시절이어서 유명인을 통한 홍보가 높은 때였다.

 

실제로 김현철 내각수반의 부인은 제주도를 한번 방문했다가 제주도 서귀포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내외국인 지인들을 제주도로 직접 안내해 데리고 와서는 제주도를 알리는 역할을 많이 했다.

 

또 한번은 유명한 연예인 악단이 제주도에 왔다가 기상이 나빠서 예정일에 돌아가지 못하고 제주에 체류할 수 밖에 없었는데 체류비가 부족해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악단은 바로 이봉조 악단이었는데 현미 한명숙 등 유명가수도 있었다.

 

나는 이들을 도지사실로 불러 체류비를 부담하고 식사대접도 하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후 서울로 보냈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간 후 가는 곳 마다 제주도지사가 제주에 가니까 이렇게 해 주더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제주도 홍보를 해준 일도 있었다.

 

지사 퇴임후 해군참모총장 취임식 때는 이들이 그 때 일을 잊지 않고 전부 와서 축하공연도 해주기도 했다.

 

나도 제주도지사를 했던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는 부수의 효과도 거둘수 있었다.

 

당시 나로서는 제주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적고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직접 봐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보이·걸 스카우트 창립>
각도에 청소년 단체인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가 있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유독 제주도만 없어 두 단체를 창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먼저 나는 내가 직접 보이스카우트 초대 회장을 맡아 초기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 때가 1962년 10월 14일이었다.

 

이로부터 한 달후인 11월12일에는 내 아내가 장시영씨 부인 등 제주지역 유력 여자들를 모아 제주도는 여다의 섬임을 강조하며 제주걸스카우트연맹을 창립했는데 초대 회장을 맡았다.

 

나와 내 아내가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초대회장을 맡은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단체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이후 내 아내는 제주도를 떠난 후에도 제주걸스카우트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더니 지난 1984년 7월 서울에서 제주출신 걸스카우트 대원과 지도자를 지낸 사람들을 중심으로 걸스카우트 재경 제주후원회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는데 지금까지도 매해 지원해오고 있다.

 

이는 제주는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다른 지역과 비교해 교통비 등 경비가 많이 드는 부담을 덜고자 하는 고향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원회는 아마 전국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초창기에는 표고버섯 등 제주특산물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후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인지 내 아내 현병화는 제주도로부터 일찍이 명예 제주도민으로 인정받았다. 걸스카우트 재경 제주후원회 회원들은 현재 서울 제도민회를 떠받치는 기둥들이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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