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해방후 첫 공식일본방문2
28. 해방후 첫 공식일본방문2
  • 강영진 기자
  • 승인 20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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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계도 강연 참석,교포사회 심금울려, 재일동포와 교류강화 추구
강연계기로 조총련계 제주개발 동참 유도, 일본 정치 재계 언론계 방일단 주목

일본에 방문한 첫 날 도쿄의 유명한 구단회관에서 제주출신 재일교포들을 모아서 제주도개발의 비전에 대한 강연회를 열었는데 이를 듣지 못한 일부 동포들이 강연을 또 해줄 것을 요청해 제주도 개발에 대한 정책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일본 도쿄 신사 근처에 있던 구단 회관은 지금의 컨벤션센터 같은 시설로 아무나 빌려쓰기도 어려운 시설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방일단에 대한 배려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교포들은 내가 하는 강연을 정말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끝까지 듣고 오사카에서도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일본 도착한지 6일째 되는 날인 1월 21일 오사카를 방문했는데 일본 경찰이 오사카에서 강연은 하더라도 조총련계가 많아서 주의해 주시고 도착과 떠날 때 까지 책임지고 경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강연은 고향 제주도의 개발을 위한 것인 만큼 조총련계 이든 민단계이든 관계없이 제주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제주개발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아무런 소동 없이 교포들은 조용하게 경청했다.

 

오사카에서의 강연소식을 들은 도민들이 못들은 사람들이 많으니 또 한 번 와서 해달라고 해서 다시 오사카로 가서 강연을 했다.

 

일본 경찰은 이 때도 제주출신 교포 중에는 조총련계가 많아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 해야 하고 조총련계 일수록 더 참여시켜야 한다고 했다.

 

일본 경찰은 내가 강연장으로 갈 때 진행 코스를 전부 바꾸는 등 신변안전을 위한 경호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오사카는 다른 지역보다 조총련계 활동이 강하고 시가지 곳곳에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재일제주개발협회측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뜻밖에 강연이 조용하게 흘러가자 나중에는 경계심도 없어지고 잊어버릴 정도로 고향사랑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

 

실제로 조총련계 교포들도 상당수 나의 강연회에 참석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하지만 조총련계가 많이 참석했음에도 아무런 사고 없었고 제주도 개발계획에 대해 보고하니까 조용했다.

 

재일제주개발협회에서는 총련계 교포들도 오니까 주시 했는데 저녁 파티 때에는 조총련계도 전부 초청했으며 이를 계기로 조총련계의 고국방문과 제주개발 투자도 늘어났다.

 

당사 오사카 도민회는 안재호씨가 회장이었는데 나의 강연의 효과를 봤는지 결국에는 일본 교포들 사이에 고향 개발에 참여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나는 이때 제주출신 동포들이 애향심은 좌우이념을 떠나 똑 같다는 것을 느꼈다.

 

오사카에서 행한 나의 강연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그들의 심금을 울렸던 모양이나 오히려 나는 보잘 것 없는 내 강연에 감동을 해준 도민들로부터 크게 위로를 받았다.

 

제주출신 재일동포이 내게 보여준 애향심에 우러난 마음은 소중한 의미를 가졌고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당시 내 연설의 요지는 이렇다.

 

"도민들이 여러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안부인사를 전한다. 언제든지 고향방문을 해주시실 바란다는 인사를 전한다.

 

여러분의 열렬한 환영은 곧 30만 제주도민에 대한 환영으로 생각하며 고향에 있는 여러분의 부모형제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그대로 전해드리겠다. 구 정권에서 버림받았던 우리 제주도는 5·16혁명 이후에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할 기적을 이루고 있다.

 

시가지는 깨끗이 포장되고 있고 한라산 횡단도로가 올해 7월에 준공되면 전국 마라톤대회를 제주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그때 여러 교포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참석해 달라.

 

오사카에 오기 전에 일본의 여러 지방의 스카이라인도 봤지만 한라산 횡단도로는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경치가 훌륭하다. 이것은 일제 때나 자유당·민주당 정권 때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었다.

 

옛날부터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는 여자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 일생을 물허벅을 지고 다녀야 한다고 하지만 혁명정부의 박정희 의장은 '소나 말도 물을 마음껏 마시는데 사람이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면서 즉각 제주도의 급수대책을 세우도록 지시해 이제는 어느 부락에서나 간이수도가 설치돼 물허벅 얘기는 옛날 얘기가 됐다.

 

또 원주민 복귀사업으로 4·3으로 맺힌 제주도민들의 한도 깨끗이 씻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선물보다도 여러분의 단결된 모습을 여러분이 주신 선물로 등에 잔뜩 짊어지고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겠다"

 

나의 이같은 강연을 들은 교포들은 감격의 박수를 떠나갈 듯이 보내주었다.

 

일본 도착 환영식에는 한일농림수산교류협회 회장인 노다 중의원과 재일제주개발협회고문인 요시다 박사, 일본상공회의소회장인 누마스 회장 등 재계인사, 자민당 간부진까지 공항으로 마중나와 우리를 환영했다.

 

우리는 아마도 그때 한·일 국교정상화를 노리는 일본의 정치적 포석도 없지 않았다는 판단을 당시에 하고 있었다.

 

한국과 무역교류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던 후쿠오카를 방문했을 때는 시청의 국.과장들의 안내를 받았는데 문종철 제주대학장이 교토제대 출신임을 알고는 적극적으로 교류지원을 요청했다.

 

교토제대 출신 후쿠오카시의 한 공무원은 후배가 선배에게 드리는 허물 없는 말로 듣고 후쿠오카는 한국과 무역교류를 위해 항만을 수리하고 호텔을 건설하는 등 힘써오고 있는데 오사카나 도쿄만을 상대로 무역을 교류하지 말고 우리와도 교류해달라고 간청했다.

 

마지막으로 도쿄로 돌아온 우리 방일단은 도쿄시장으로부터 행운의 열쇠를 받았고 NHK TV에 출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다 2월 4일 귀국했다.

 

나는 귀국 후 기자회견을 갖고 방일성과를 도민들에게 보고하는 한편 재일동포들과의 교류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몰두했다.

 

그 방안의 하나로 프로권투 세계주니어 라이트급 1위이며 일본 페더급 챔피언인 재일동포 2세 한규철 선수의 초청경기였다.

 

나는 한 선수가 고향인 제주에서 친선경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게 전해오자 3월 26일 제주도관광협회에서 도내 기관 단체장과 지역유지들을 소집한 회의를 하고 경기를 준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주도민들은 기대하며 설레였다.

 

4월 24일 서울을 거쳐 제주에 온 한 선수는 도민들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으며 제주도공설운동장에서 한국라이트웰터급 1위인 이교상 선수와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문화방송과 제주방송에서 실황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아울러 최정숙 신성여고 교장을 단장으로 하는 미스 탐라 입상자 3명을 제주도의 미의 사절단을 구성해 2주간 일본으로 보내 제주도를 홍보하며 재일교포사회와 교류를 잇게 했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yjkang@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