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한라산횡단도로(5.16도로)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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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산악 관광도로이자 제주개발의 상징
준공날짜 어길 경우 공사업체 교체 으름장
"김한준 국장 공사속도 높이느라 꽤나 고생"

1962년 봄에 시작한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공사가 6개월이 넘어선 9월이 됐는데도 공사 진척율이 30%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더디게 이뤄졌다.

 

나는 이 공사가 꽤 어려운 공사임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나 찬바람이 불고 조만간 겨울철에 들어서면 공사가 더 어려워질 것임을 감안하면 조금이라도 공사를 재촉해야겠다는 마음에 애가 타들어갔다.

 

다음해 5월 중순까지는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공사를 하다가는 연말까지도 예정된 공사를 완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사를 맡은 삼부토건을 비롯한 공사업체측에 수차례 공정률을 높일 것을 재촉하고 예정된 준공날짜를 어길 경우는 공사업체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한 번씩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나는 또 동원 가능한 중장비들을 총 가동해 포장에 필요한 골재 생산량을 늘리고 공사현장 감독자를 상주시켜 공사를 재촉할 것을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자 삼부토건 등 공사업체들은 한라산의 겨울철 날씨를 감안하지 않고 다그치기만 하는 나를 좋게 볼 수가 없었던지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삼부토건측은 제주도 개발의 상징인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포장공사를 빨리 마쳐야 한다는 제주도의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기상황이 나쁜 한라산 겨울철 날씨를 고려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계절적 한계를 감안하지 않고 공사를 진척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예정일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아줄 것을 내게 수차례 호소해왔다.

 

실제로 횡단도로 포장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한라산 현장은 고지대라는 어려움외에도 겨울날씨가 다른 곳 보다 빨리 와서 기온차가 많고 눈도 자주 내려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공사에 많은 장비가 투입됐지만 공사물량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침투식 마카담 공법으로 추진된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공사는 곡괭이, 삽, 바지게 등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하는 모든 수단들이 총동원된 것이다.

 

특히 도청 앞에서 산천단까지 도로포장공사와 동시에 추진된 성판악에서 영주교 간 10여 ㎞ 구간의 공사는 포장공사에 앞서 도로 개설공사였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공사는 동방공영이 맡아서 했다.

 

나의 잦은 재촉에도 결국 공사는 해빙기인 이듬해인 1963년 봄이 돼서야 내가 원하는 정도의 속도를 낼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사를 총 감독한 김한준 제주도청 산업개발국장과 홍성림 건설과장은 공사를 재촉하는 나와 난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삼부토건 사이를 오가면서 중재를 하고 공사의 속도를 높이느라 꽤나 고생했다.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공사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이뤄진 것이 한라산 도로변의 잡목을 용재림으로 수종을 갱신하는 사업이었다.

 

나는 횡단도로 개설 포장공사가 한라산의 가치를 더 높일 것 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한라산 수종갱신은 횡단도로 개설 포장공사가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공사에 앞서 현장 답사를 한 결과 한라산의 수종은 대부분 쓸모 없는 잡목의 원시림이었을 뿐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나무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횡단도로 포장공사를 하면서 한라산의 수종을 도로변이라도 갱신해 경제림을 조성할 것을 영림당국에 제안했고 경제림이 조성되면 나무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 관광적 가치도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한라산 횡단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를 통과하는 도로라는 가치와 함께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관광도로로 활용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수종갱신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중앙영림당국은 한라산은 장차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것에 대비해서도 한라산 국유림 개발계획 차원에서 이용도가 낮은 천연 잡목류를 삼나무 등 경제목으로 대체하는 경제림화 계획을 수립했다.

 

7월부터는 잡목 벌채에 착수했고 9월부터는 삼나무 등의 용재목을 심기 시작했다.

 

지금 한라산 횡단도로변에 즐비한 삼나무들은 그 당시 갱신한 수종들로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와함께 영림당국은 한라산에 표고자목으로 쓰기 위한 나무를 벌목하는 것을 허가하고 표고재배업자에게 부지도 불하했다.

 

또 한라산의 국유화됨에 따라 관리를 위한 산림과가 신설돼 직제배정이 완료된 것도 그해 8월이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식물학 조사단(단장 박만규)이 1962년 4월 12일 제주도에 내려와 한라산 식물생태를 조사하던 중 왕벚꽃나무를 발견해 일본 국화의 벚꽃의 원산지는 제주도 한라산임을 입증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 중앙문화재보호위원회는 심사를 했고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한라산 왕벚꽃나무를 천연기념물 155호로 지정 확정했다.

 

나는 이때부터 한라산이 조만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제주도 한라산에 도로가 뚫린다는 소식이 신문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많은 국민들도 한라산 횡단도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는 또 그만큼 제주도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육지의 어떤 사람들은 한라산에 터널을 뚫는 것이냐고 묻기도 하고 그렇게 높은 산을 넘는 도로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실제로 이같은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혁명정부의 최고위원과 장관, 고위관료들이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들리는 곳이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공사현장이었다.

 

한라산 횡단도로는 단순한 한라산 도로개발이 아니라 제주도개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가 군인이기 때문에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공사를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사실 나는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우려로 속을 앓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의 인사들이 현장을 방문하고 박정희 의장이 높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나는 더 열의를 가지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라산 횡단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악도로이자 관광개발도로라는 점에서 이후 우리나라 산업의 대동맥으로 건설된 경부고속도로의 어머니인 셈이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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