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제주도내외 교통망 근대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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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노선 확충 중산간지역 개발 촉매 역할
제주시내 도로포장 추진...교통망 혁신
1962년 트럭개조한 시내버스 첫 운행
중산간 노선 확충 4.3이재민 복귀사업 도움

내가 제주도지사에 부임하자마자 시작한 제주시내 도로 포장공사는 도내 교통망에 일대 혁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주시와 서귀포를 남북중심으로 하고 동쪽과 서쪽으로 일주하던 시외버스만 다녔는데 제주시내에도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62년 5월 한일여객이 버스 6대를 가지고 시내버스 면허를 처음으로 받았는데 당시 국내에는 버스제작회사가 없어 트럭을 개조해 10월부터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개통식을 갖게 됐다.

 

시내버스는 5개 노선에 32개 정류소를 설치해 운행했는데 제주시 동부두를 기점으로 제주도청(옛 제주시청), 제주공항, 외도동을 운행하는 3개 노선과 관덕정을 기점으로 아라동과 삼양동을 연결하는 2개 노선이었다.

 

당시 시내 버스요금은 1구간이 5원, 2구간 7원 3구간 10원으로 구분해 책정됐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해본 적이 없어 쉽게 타려하지 않는 바람에 거의 빈차로 돌아다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경쟁업체 없이 한일여객이 독점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해서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5대의 전세버스 면허도 함께 받았다.

 

트럭을 개조한 전세버스는 비록 볼품이 없었지만 자동차가 귀했던 도민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는데 먼 거리를 나들이 갈 때나 결혼식 등 큰 행사에 편리하게 이용됐기 때문이다.

 

당시 큰 버스를 육지에서 구입은 했지만 제주도로 수송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나는 이같은 문제가 있음을 알고 당시 이성호 해군참모총장에게 부탁해서 한라산 횡단도로 공사장비는 물론 도지사 관용차까지 운송했던 해군 LST함정을 이용해 제주도로 가져 올수 있게끔 도왔던 일이 있다.

 

그런데 다른 경쟁 버스회사를 운영하던 분이 내게 왜 버스를 제주도로 실어다 줬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일여객은 또 한라산 횡단도로가 포장되고 개통되기도 전에 제주시~서귀포간 노선 운행 면허를 받기도 했다.

 

시외버스는 해안 일주도로만 동서로 운행해서 중산간 지역에 살던 도민들의 교통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산간 지역 주민들은 이때만 해도 걸어 다녔고 어쩌다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원시적 생활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1962년 9월 영주여객이 한림~모슬포간 중산간 지역 마을을 연결 운행하는 노선을 개통하고 하루에 1차례씩 왕복운행을 시작했다.

 

이 노선은 제주시에서 한림초등학교를 경유해 모슬포까지 30㎞정도였는데 13개 마을을 경유했다.

 

특히 이 중산간 버스 노선은 중산간 지역개발의 촉매역할을 했고 다른 중산간 지역의 버스 운행을 위한 도로개설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울러 내가 역점적으로 추진한 4·3이재민 원주지 복귀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와함께 중산간 지역에 지하수가 개발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도로와 교통망이 갖춰지기 시작하고 물문제가 해결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가장 큰 발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1962년 당시 제주도내에 등록된 차량대수는 305대에 불과할 정도로 차량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 관용차량이 50여 대, 자가용이 100여 대이었고 영업용은 150여 대였으며 그나마 절반 이상이 화물차량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의 차량등록대수가 1가구를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61년 이전까지 제주도가 다른 육지 지역에 비해 낙후되고 소외된 가장 큰 원인은 본토로부터 고립된 섬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도지사에 부임해 제주도와 육지간의 연륙교통의 문제를 살피기 위해 서울에서 열리는 첫 지방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직접 체험해본 결과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로 열악했다.

 

제주와 목포, 제주~부산간 연결하는 선박운항 시간이 워낙 많이 소요되는 것도 문제지만 기상상황이 조금만 나빠도 배가 운항하지 못할 정도로 소규모 선박이 투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용객이 적어 정기여객선도 없어 제주와 육지간 이동이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악해보니 제주항에 큰 암초가 있어 큰 선박은 아예 들어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해군에 요청해 수중폭파를 특수 전문으로 하는 UDT대원들을 제주도로 오게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 5·16이후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제주도민들에게 제주~부산 간 연륙해상교통의 현대화를 위해 대형선박을 건조해 제주~부산 노선에 투입할 것을 약속했다.

 

실제로 박 의장은 악천후에도 제주해협을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대형여객선 건조를 국제입찰하도록 지시했고 일본의 조선소가 건조한 890t급 대형 여객선이 제주~부산 노선에 취항했다.

 

이에 앞서 나는 혁명정부에 요청해 해방이후 한동안 방치됐던 제주항 개발에 국고를 본격적으로 투입하도록 했다.

 

1962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기 시작한 혁명정부는 제주항 개발에 수억을 투입해 무너진 방파제를 복구함과 동시에 확장하고 준설공사를 벌여 대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정리=강영진 기자
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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