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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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하계향토학교

제주향토학교에서 맞는 3일째날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에 친척이 상주해있는 학생들은 성묘를 하러떠나고, 남은 이들은 한라산 등반을 위한 채비를 꾸렸다. 새벽녘까지 흩뿌렸던 비의 기운은 상쾌한 바람안에 녹아들어 등반하기에 최적의 날씨를 이루어 내었다.

윗세오름을 목표로 우리가 택한 것은 어리목코스였는데 , 등반길이가 길지 않고 경사가 심하지 않아 가볍게 오르기에 대표적인 코스라하였다. 그러나 우거진숲과 돌계단, 무엇보다 시야가 트이지 않은 채 무작정 비탈길을 오르는 일은 발걸음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무겁게 만들었다. 시원한 바람도 송글송글 맺혀 흐르는 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산 윗세를 향하던 시선은 어느덧 발끝에 돌계단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제주 모태의 상징인 한라산에서 거칠고 험준한 남성적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지쳐가고 있던 나의 시선에 한 무리가 들어왔다. “하나, 둘, 셋, 파이팅”을 외치며 힘든 산행에 서로 동반가가 되어가던 그들. 한국, 미국, 일본 각기 살아가는 국가는 다르지만 제주의 피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모인 그들은 서로의 손을 의지하여 나눔이라는 산행을 해나가고 있었다.

한참을 걸으니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경사길이 끝나고 완만한 동산이 시작된 것이다. 나무와 돌, 흙 그리고 가파른 산세 이것이 내가 생각해오던 산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한라산의 이 고산초원은 이러한 고정관념이란 달걀에서 막 부화된 상태처럼 내게 다가왔다. 지천에 널린 희귀식물과 야생화들은 따스러운 어머니의 품과 같이 온기를 날라주었다.

시로미 본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검고 작은 시로미 열매의 시큼함에 고된 몸과 지친 마음은 꿈결처럼 날아갔다.

길가 옆으로 조그마한 흙포대들이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당시 일제가 훼손한 한라산을 살리기위해 등산객들이 저마다 한 자루씩 옮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흙포대 속에서 자라난 한 포기의 풀과 꽃잎을 드리워낸 꽃들의 모습은 제주의 땅, 한라산의 피를 이어받아 세대를 이어 자라난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윗세오름에 올라 올려다본 백록담의 모습은 잊지못할 장관이었다. 거친 암벽으로 이루어진 분화구의 모습은 여성적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이었으며, 아름답다기보단 멋있다는 그 자체였다. 바다바람을 맞으며 우리네를 키워낸 제주 어머니의 단호함과 강인함 이것이 곧 한라산의 모습이자 제주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백록담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오기 위해 영실코스로 접어들었다. 영주십경 중의 하나라는 영실기암의 장관은 어리목의 그것과는 도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산 곳곳에 박힌 기암들은 저마다 사연을 품은 듯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때로는 갓난아이를 품은 어미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전날 내린 비로인한 물줄기는 암석 위를 흘러 구름위로 떨어졌다.

아름다운 섬 제주, 그리로 한라산. 우리네들에겐 익숙한 곳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그 가치만큼 이름을 알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제주는 고산초원전의 경사길을 오르고 있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여기에 ‘우리’라는 말을 덧붙이려한다. 제주를 알리는 일, 그리고 제주를 알아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세계에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길이요 제주의 후손으로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나와 대면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천도민회 · 인하대학교 3학년 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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