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不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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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자 눈발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지만 진눈개비가 발길을 붙들었다. 빈 택시가 몇 대 지나갔으나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택시를 세워 탔다. 그 순간 몇 걸음 앞에 서 있던 한 여자가 무엇이라고 높 낮게 얘기했다. 택시는 출발했고 기사님은 요즘 시국과 날씨를 사설했다. 나는 아무래도 궁금했다. 분명히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잠시 후 그 말을 생각해 냈다. “택시 제가 잡았는데요”였다.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말을 알아들었다면 아마 양보했을 것이다. 어수선한 날씨에 세상에 아직 많이 열리지 않은 귀가 나의 잘못이었다. 기사님도 그녀를 위해서 차를 세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가슴 한 구석엔 가책이 지금도 남아있다. 나는 항상 모든 일에 꿈뜨게 반응하며 ‘느림의 미학’에 편향적으로 살아왔다. ‘빨리 보다는 천천히 그러나 바르게’가 나의 기준이다.

나는 잠시 ‘내일의 덫’에 걸려 넘어졌었다. 승진과 축재를 위하여 밤낮없이 오직 야망과 성취욕에 사로잡혀 오늘을 사는 사람, 미래만을 위해 목적을 달성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쫒는 신기루가 ‘내일의 덫’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도한 한 미국인 스님은 미국에 있는 그의 사찰 작은 건물에 ‘多不有時(다불유시)’라고 적어 놓았다. 절에서 볼 수 있는 휴급소(休急所)와 해우소(解優所)에 해당된다. 휴급소와 해우소는 경봉스님이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많은 중생들에게 ‘급한 작은 일을 쉬게 하고, 큰 근심을 버리게 할 량’으로 나무 조각에 써서 화장실에 직접 붙였다고 한다.

‘多不有時’를 처음 사용한 사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나 영어의 WC를 우리말로 읽어 사자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多不有時’는 ‘많지는 않으나 시간은 있다, 또는 시간은 있으나 많지 않다’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이미 시간이 많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 가는 순서와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병술년 새 해는 우리 모두가 선후와 완급을 분별하여 더욱 지혜롭게 살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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