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며 날씨가 다소 풀리긴 하였으나 아직 동장군의 맹위는 여전한데, 설마 알을 낳아 품으려는 건 아니겠지.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수놈과는 달리 암놈으로 보이는 비둘기는 둥지 안으로 들어가 앉아 보기도 하고, 알을 품고 있는 동안 비와 바람을 얼마나 잘 막아줄 것인가 가늠이라도 하듯 사방으로 고개를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지난 해 가을,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웃자란 가지들을 전정해버린 터라 바람을 막아줄 잔가지도, 비를 막아줄 나뭇잎도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빈 둥지 주변을 한참동안 맴돌던 그들은 이내 날아가 버렸다.
자신에게 보호막이 되어 줄 그늘이 없을 때 느껴지는 불안감과 비정함이 어디 하잘 것 없는 미물들 뿐이겠는가?
지난 겨울은 초입부터 시작된 강추위가 겨우 내내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제 몫을 못하는 하늘은 잠깐씩만 햇빛을 내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몸을 낮추어 더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 별 수 있겠나.
새해 벽두부터 신문의 일면을 차지하던 우울한 내용의 기사들, 흙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진 농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고, 세계인의 관심이 모아지던 한 과학자의 연구 결과는 아쉽게도, 안타깝게도 새가슴을 만들어 버렸다.
도무지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한파마저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주머니를 더 털어내야 속이 풀릴 모양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호막이 되어 줄 그늘도, 청신호를 보내줄 꾀꼬리도 못 찾겠다.
아침에 빈 둥지를 찾아와 잠시나마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비둘기.
그들은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낡은 집을 개보수 하러 다시 찾아온 것이란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 앞에서도 숨 죽여 봄을 기다리는 것들이 있듯이….
황량한 겨울 벌판에도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것들.
숨을 고르며 움트길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이 계절에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가장 순결한 의미일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제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