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언론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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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성폭력에 관한 온갖 소식이 넘쳐났다. 마치 소용돌이가 몰아치듯이 성폭력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들은 혼란과 분노를 느낀다.

전국을 강타한 연쇄 성폭력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초등학교 여자어린이를 성폭력한 후 살해해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한 소식, 국회의원에 의한 기자 성추행, 교도소에서 교도관에 의한 재소자 성추행 등은 대중매체의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뿐만 아니다. 군대내 성폭력 사건, 근친 성폭력 등 성폭력의 여러 유형에 대한 소식이 넘쳐났다.

매일 새로 보도되는 성폭력 소식을 볼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끼고 또 느낀다. 게다가 정부나 정당에서 제시하는 성폭력 방지대책과 요즘의 행태, 특히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찹찹한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은 어디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라고 응답할 것이다. 거의 모든 연쇄 성폭력은 가장 안전한 공간인, 집에서 발생하기에 연쇄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은 없다. 이들은 평생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침범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고, 영혼은 손상된다. 그만큼 흉악한 범죄임에도, 언론은 연쇄 성폭력 범죄자를 ‘발바리’라고 희화화하여 범죄의 흉포함을 경감시켰다.

어린이에 대한 강간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와 정당에서 마치 경쟁하듯 많은 대책들을 내놓았다. 전자 팔찌, 야간 통행 제한, 성폭력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 주거제한 등 온갖 대책들을 내놓았고, 언론을 이를 충실히 보도하였다. 작년에도 이런 호들갑을 경험한지라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가라앉을 것이라 전망했다.

한나라당 최연희 최고위원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였고, 뒤이어 교도소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정당들이 너무 바빠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이라고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해당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는 법무부장관에게 교도관성추행 사건의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이제 성폭력은 정치권의 당리당략을 위한 소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행태를 볼 때 성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리라는 기대는 사라진다. 미국은 한 어린이의 강간살인 피해 이후로 메건법을 제정해 어린이 성폭력 범죄자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성관계 동의 연령을 16세로 규정해 10대간의 성관계와 성인에 의한 성적 착취를 최소한도로 구별하는 대책을 수립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론, 성찰적인 언론 보도와 정치권의 진지한 관심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대책이 요원한 일인가? 이번에도 여러 가지 대책들만 탁상공론하며 나열하는 것으로 끝날 것인가? 언론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성찰적이고 깊이 있는 보도를 할 때 성폭력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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