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판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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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끄러운 세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국제 주도권 쟁탈을 위한 외교전은 연일 세계 언론의 톱을 장식하고 있다. 나라 안은 어떤가? ‘국회의원 성추행’에 대해 갑론을박에다 ‘총리의 삼일절 골프’로 아우성이었다. 제주사회 또한 5ㆍ31 지방선거의 비방전을 비롯해 “환경심사 과정이 정상이다, 아니다”, “예술계는 장기집권은 문제가 있어 단임제를 하자”는 등등 야단법석 판의 절정을 이뤘다.

정상적인 일처리라면 문제가 될 수 없는데 왜 문제가 되는지? 정해진 기준과 과정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단임제만이 제반문제의 해법이라면 그렇게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까? 등등 말들이 많다.

사실, 제주사회에 화두가 되는 문제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에 있다는 답을 대부분 알고 있다. 해법을 알면서도 유행어(?)가 되어버린 ‘양극화’현상을 왜 만드는 것일까?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보니 판단력이 실종되고 암울한 미래만 보여 답답하고 마음 아프기 그지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이런 야단법석 판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지금 갖고 있는 사고에서 조금만 유연성을 갖고 각도를 달리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양보의 미덕’이 건전한 사회의 근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신의 주장을 마음에 묻어두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주장이 고개를 들 수 있기에 문제의 불씨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 국어사전에는 ‘양보’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굽혀 남의 의견을 쫓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액면대로 이해한다면 요즘 사회에 ‘양보문화’가 자리 잡기란 정말 어렵고 힘들다. 교육의 수준이 높아져 각자 형평성, 공평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어 어느 한쪽이 양보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 세상, 시끄럽고 요란한 시대의 해법은 아주 간단하다. ‘양보문화’의 고정관념에서 조금 각도를 달리한 접근,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묻어두는 단순한 ‘양보’보다 먼저 상대방을 자상하게 보살피는 즉, 남을 염려하는 마음의 ‘배려’가 치료제이다. 속된 말로 ‘배려문화’의 해법이 약 발을 받게 되면 특별하고 신나는 세계적인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해 훗날 자랑스러운 선조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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