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부국의 여명을 연 이승만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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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송당리 국립목장 개발 맞물려 귀빈 숙소 용도로 건립
▲ 구좌읍 송당목장 내에 들어선 이승만 별장 모습. 지붕 위로 올라온 굴뚝과 세련된 창문, 테라스는 서구 근대건축양식을 도입했지만 허튼 쌓기로 현무암을 사용한 외벽은 제주의 토속적 문화가 가미됐다.
개화기에서 일제 침탈, 4·3, 6·25전쟁 전후까지 제주의 근대는 격변의 시기였다.

근대 유산은 질풍노도의 시대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본지는 21세기의 가교이자 이정표였던 근대 유산을 재조명 해 제주의 과거와 오늘을 짚어보고, 미래의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제주시 구좌읍 송당목장에 있는 ‘이승만 별장’은 폐가나 다름없었다.

도내 유일의 국가원수와 관련된 역사현장이자, 도내 최초의 서구식 근대주택이 50년 넘게 방치된 탓이다.

이승만 별장은 2004년 9월 등록문화재 113호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런데 고인에 대한 4·3 책임 논란이 건축물까지 전가되면서 거미줄이 쳐지고 잡초가 무성해졌다.

제주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올해 사업비 2억4600만원을 들여 복원에 나섰다. 너덜거리는 지붕과 흔들리는 기둥을 바로 잡는 등 내·외부를 당시 모습으로 재현하기로 했다.

또 침대와 탁자·의자, 벽난로, 주방기구 등 집기류를 보존 처리하고, 주변도 말끔히 정리하기로 했다.

1957년에 지어진 이승만 별장은 주요 귀빈들을 모신다는 뜻으로 ‘귀빈사(貴賓舍)’라 불려졌다. 234㎡(약 43평) 규모의 단층 주택은 방 4개와 거실, 식당, 주방, 화장실 2개를 갖췄다.

사료에 따르면 이 집은 축산 부국을 일궈내려던 의지로 송당목장의 기틀을 다진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8군 사령관으로 6·25전쟁을 치른 밴플리트 장군은 퇴역 후 고향인 플로리다주에서 목장을 경영했다.

1956년 한·미재단 고문으로 한국을 자주 찾았던 그는 제주도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목장을 만들자고 이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축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몸집이 작은 한우를 개량해야 한다고 이 대통령을 설득하곤 했다.

1957년 3월 제주를 찾은 이 대통령과 밴플리트는 구좌읍 송당리 민오름 일대 초지를 국립목장 부지로 점찍었다. 농림부는 송당목장개발계획을 발표했고, 그해 7월까지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루 150명, 연인원 8000여 명이 동원돼 축사 7동과 창고, 특호 관사(이승만 별장), 35㎞의 목책, 발전시설 등이 설치됐다.

물이 고이는 ‘진수내’를 막아 댐을 만들어 가축급수와 식수로 공급했다. 매설된 수도관만 11㎞에 달했다 당초 900만평에서 300만평으로 축소됐지만, 당시로는 대단한 시설이었다.

이에 맞춰 플로리다주에서 사육되던 브라만종 166두가 부산항을 거쳐 성산포항으로 들어왔다. 밴플리트의 협조로 트랙터와 경운기 등 축산 농기구도 수입됐다.

송당목장 준공식에 맞춰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제주에 온 이 대통령은 관덕정에서 열린 도민환영대회에서 “우리 국민도 이제는 쇠고기를 먹어야 합네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됐다.

다수의 도민들이 메밀범벅으로 끼니를 때웠던 그 시절 쇠고기는 구경하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은 하야했고,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송당목장의 적자 누적은 국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국립목장은 결국 삼호방직에 팔리게 됐다.

제주 축산 부흥의 한 축이었던 귀빈사에는 이 대통령 부부가 1957년과 1959년 두 차례 머물면서 이승만 별장으로 널리 불리게 됐다.

축산 부흥의 의지는 곳곳에 남아있다. 벽난로 위에는 목장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소머리 조형물 벽화가 있으며, 테라스에는 목장을 암시하는 소 디자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자재는 미국에서 공수됐고, 국군 공병단이 지었다. 외벽은 현무암을 사용했는데 56년이 지난 지금도 균열이 없이 튼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변한 기술이나 자본조차 없을 당시 제주도 축산 발전의 여명기를 연 송당목장에 대한 이 대통령은 제주 방문 연설에서 “내가 제주도를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들려는 것은 산과 바다라는 많은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송당목장은 한국사람들에게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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