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병대교회 "전쟁에 나서게 될 군인들에게 평온을 심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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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장도영 훈련소장 부임 후 건립...대민 봉사에도 앞장
▲ 강병대 교회 전경.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강병대교회는 1952년 5월에 착공, 그해 9월에 준공됐다.

교회가 건립될 당시 국군과 중공군은 휴전선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6·25전쟁은 피아간 혈투로 접어들었다.

1951년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섰고, 이듬해 장도영 장군이 2대 소장으로 부임했다.

장 소장은 훈련 장병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고, 강한 병사를 기르기 위한 취지로 교회를 건립하면서 ‘강병대(强兵臺)’로 명명됐다.

전쟁의 포성이 한창인 때여서 전문 기술자가 아닌 국군 공병대가 건축을 도맡았다.

제주 현무암으로 지어진 교회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외벽은 당시 모습 그대로다. 도내 군사유적지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면서 2002년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38호로 지정됐다.

예배당 595㎡, 교육관 51㎡로 전체 건물면적은 646㎡(195평) 규모다. 건립 당시 목재 골조 위에 함석 지붕을 씌웠으나, 2006년 보수공사를 벌이면서 지붕과 교회 첨탑은 새롭게 단장했다.

뾰족 첨탑과 아치형 문과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등은 중세 고딕식 건축양식으로 고풍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거무스름한 현무암 외벽은 제주의 전통양식이 반영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옛 육군 제1훈련소에는 많게는 7만 장병이 머물며 훈련을 받았다.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훈련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1952년 고지 점령을 놓고 전황은 급박하게 전개됐다. 훈련 중 사망한 동료의 죽음을 보며, 또는 전쟁 소식을 전해 들으며 훈련소 장병들은 극도의 두려움과 떨림이 엄습해 왔다.

자고나면 전쟁터로 끌려갈 이들은 강병대교회에 들러 마음의 안정과 용기를 가졌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전쟁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피난을 내려온 많은 사람들도 이곳에 찾아 마음을 의탁하고 전쟁이 끝나길 기도했다.
▲ 강병대 교회 옛 전경.

고(故) 한경직 목사 등 유명한 목회자들이 부흥집회를 여는 등 수많은 장병과 가족, 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듬어줬다.

강병대교회는 주민을 위한 교육공간이자 대민봉사 기관으로 활용됐다. 모슬포지역의 첫 유치원인 샛별유치원이 1952년 이 교회에서 태동했으며, 인근의 모슬포중앙교회와 모슬포제일교회의 모태가 됐다.

고등교육을 받은 군인들은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연말이면 전쟁 고아들을 위해 산타할아버지로 변신해 신발과 옷을 선물했다.

심지어 연고가 없어 힘들게 살아가는 산모를 찾아가 쌀과 미역을 전달한 미담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1953년 전쟁은 끝났고, 12년이 흐른 1965년 이 교회는 공군 8546부대로 편입돼 기지교회로 새롭게 발족됐다.

1966년에는 교회 부설 야간 중학교인 신우고등공민학교가 설립됐다. 1981년 학교가 폐교될 때까지 14회, 2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부대 장교들이 교사로 나서면서 지역 청소년들에게 향학열을 불어 넣었다. 이 학교 출신으로 육사를 나온 임영봉 예비역 대령이 있다.

이 교회에는 60년 전 무운과 안녕을 빌었던 노병들과 군 주요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노병들은 전장에 끌려가기 전 위안과 믿음을 줬던 교회에 대한 고마움을 방명록에 남기고 있다.

교회 관계자는 “강병대교회는 2002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모슬포 전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며 “단순히 교회로서 종교적 의미만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이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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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뫼 2021-02-16 19:09:43
신우학원의 교사는 장교가 아니라 대학 재학중에 입대한 장병들이 주축을 이루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