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개신교 예배, 오후에는 천주교 미사 올려"
"오전에는 개신교 예배, 오후에는 천주교 미사 올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2)강병대교회 인터뷰-김웅철 대정고 교사
김웅철 대정고등학교 교사는 6·25전쟁 당시 격동의 현장을 증언하는 역사사진자료집인 ‘강병대(육군 제1훈련소) 그리고 모슬포’를 2006년 펴냈다.

교사로 재직 중 모슬포 역사자료를 모아 지역축제 때 열었던 전시회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자료집 출간에 이르렀다. 김 교사는 2004년 강병대교회에서 기록사진을 전시하는 역사전시실을 개관할 때 자료를 제공한 바 있다.

김 교사는 “강병대교회를 거쳐 간 인물들 중에는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의 딸인 조선부 여사가 있었다”며 “피난을 왔던 조 여사는 활발한 목회활동으로 5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고 밝혔다. 참고로 조선부 여사가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은 자료집에 수록됐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 요인은 물론 참전 16개국 고위 사절단도 모슬포비행장에 내리면 반드시 이 교회에 들렸다”며 “교회 근처의 미군 고문단 1개 중대 병력도 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고 말했다.

참전 유엔군 사절단은 장병들의 훈련 받는 모습을 참관하면서 교회를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신교 교회이지만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됐다.

그는 “오전에는 개신교측이 예배드리며 목회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천주교에서 미사를 올리는 사목활동이 병행됐다”며 “당시 20대였던 군종신부는 신성여고 교장을 역임했던 김병준 신부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도영 훈련소장은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신앙심의 고취 필요성을 느껴 강병대교회를 짓게 됐다”며 “이 교회를 중심으로 유치원도 운영되면서 피난민들과 지역주민들은 폭넓은 교류를 형성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교회는 공병부대원들이 현무암을 쌓고 기둥을 올리는 등 이들의 땀과 희생이 무엇보다 컸다”며 “훈련을 받다가 차출돼 교회 건축사역에 동원됐는데 5개월 만에 완공한 것을 보면 노동의 강도는 녹록치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회 부설 샛별유치원의 원아와 가족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갖고 있는 그는 “원아들의 90% 이상은 군인 및 피난민 가족이었다”며 “원아 대다수는 대정초등학교에 진학해 1, 2학년까지 다니다 육지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강병대교회는 전쟁터로 떠나기 전 수많은 병사들의 기도가 이뤄졌던 역사적 장소”라며 “특히 피난민들과 지역주민들에게 따뜻한 온정과 희망을 줬던 봉사와 전도로 군과 지역사회에는 기념비적 장소로 각인되고 있다”고 말을 맺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