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제주를 식민지 교두보로 삼은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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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한림 옹포 다케나카 통조림공장
▲ 일제 강점기 한림읍 옹포리에 들어선 다케나카 통조림공장 사무실 건물. 목조 건물에 양철 지붕을 씌운 일본식 주택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림읍 옹포리에 있는 다케나카 통조림공장은 일제가 제주를 식민지 교두보로 삼은 증표다.

일제 강점기 한림은 번성했던 항구도시였고, 맑은 물이 솟아났던 옹포천을 중심으로 통조림공장과 감태공장, 제빙공장, 전분공장 등이 들어섰다.

통조림공장은 일본 교토 출신인 다케나카 신타로가 1926년 가업을 잇기 위해 제주에 건너와 창업했다. 일본과 가까운 제주 북서부에 공장을 둔 것은 중국 침략을 염두에 뒀다는 설도 있다.

주로 쇠고기 통조림을 생산했고, 고등어와 소라 등 수산물 통조림도 만들었다. 통조림은 호평을 받았고 일본이 자랑하는 전시 국책사업장으로 꼽히면서 조선주둔군사령관과 총독부 정무총감이 방문하기도 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 공장은 군수공장으로 바뀌었다. 만주에 있는 관동군에 군수품을 대기 위해 하루에 소 400마리를 도살한 적도 있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는 8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주야로 교대하면 군납용 통조림을 생산했다.

전쟁 말기엔 각 마을 여자청년단을 동원해 작업할 정도로 바빴다.

정작 주민들의 식량 사정은 매우 어려워 이곳에서 일해 준 대가로 고등어 1마리를 얻으면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일도 참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고 하니 열악했던 식량 사정을 짐작케 하고 있다.

공장은 1만6000㎡ 부지에 건물과 사무실, 창고가 있었고 군 고위 관계자가 머물던 관사를 비롯해 제주도 지형을 본 뜻 정원도 있었다.

현재는 사무실 목조 건물과 29m 높이의 굴뚝만 남아 있다. 굴뚝은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돼 당시로선 보기 드문 구조물이었다. 여기에는 축조회사를 알리는 ‘교토(京都) 콘크리트공업소’라는 철판 부조가 부착돼 있다.

사무실로 쓰인 건물은 전형적인 일본 건축양식으로 벽과 기둥, 바닥이 모두 나무로 설계됐다. 지붕은 양철로 덮었는데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형태가 잘 보존돼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2월 이 공장은 적산(敵産)으로 불하돼 대동식품공업사가 인수했다. 6·25전쟁 당시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군인들이 공장시설을 빌려 김치 등 부식을 만들기도 했다.

앞서 1949년 4·3 당시 명월·금악·상명 등 중산간 마을에서 온 소개민들이 이곳에 대거 수용돼 몇 달간 힘든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들은 공장 터에 판자조각과 가마니로 임시 거처를 만들어 지냈다.

이 공장 터엔 지금은 대원자동차공업사가 들어섰다. 허대훈 대표는 “1982년 입주할 당시 사무실에는 묵직한 금고와 보일러가 그대로 있었다”며 “일제시대 이 공장은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발동기를 돌리기 위해 설치된 보일러는 길이만 10m에 달해 기차 화통처럼 매우 컸다.

그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있었던지 1980년대 공장 터에 있던 관사와 보일러는 모두 철거됐다”며 “철거될 때 나온 나무와 내화벽돌은 흠짐이 없어서 일부 주민들이 갖고 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편 통조림공장 인근에 있던 감태공장(우에무라 제약회사)은 해조류인 감태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군수용 염화가리와 의약품인 요오드(옥도정기)를 생산했다.

일본에선 전쟁 물자로 감태를 공출하면서 점차 고갈됐고, 이에 따라 원료가 풍부했던 옹포리에 감태공장이 들어선 것이다.

해녀들이 채집한 감태를 말리고 불에 태운 재를 공장에 가져오면 그 재를 물에 담가 계속 끓인다. 이 물에는 소금과 염화가리, 요오드가 있어 제약회사가 군대에 공급했다.

1942년 세워졌던 이 공장은 한림공업고등학교 발상지가 됐다. 1952년 한림공고는 이 터전에 토건과와 기계과 각각 3학급으로 도지사 인가를 받아 학교를 설립했다. 공장 건물과 창고, 주택을 수선해 교실과 관리실로 이용했다.

1953년에는 문교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개교식을 가졌고, 이듬해 현재의 학교 부지로 옮겨 제1회 졸업식을 거행했다. 현장에는 안내 표석이 세워져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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