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비행장에 긴 활주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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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윤 제주대 교수, 일본 방위청 문서 입수 새로운 사실 밝혀내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조성윤 교수는 지난해 ‘알뜨르비행장-일본 해군의 제주도 항공기지 건설 과정’에 대한 책을 펴냈다.

일본 방위청을 방문, 관련 문서를 수집했고 현지 조사를 벌여 새로운 사실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학계에 보고됐던 한쪽으로 뜨고 내리는 좁고 긴 활주로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청에 보관된 항공기지도에선 활주로가 정사각형 모양에 가까웠다. 또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아닌 잔디 떼를 가져다 뒤집어 깔고 다져 놓았다.

당시 프로펠러 비행기는 바람에 따라 착륙 또는 이륙하는 방향을 수시로 바꿔야 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긴 활주로가 아닌 정방형의 모양으로 조성됐다. 사방에서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 교수는 “알뜨르비행장의 활주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격납고 앞 넓은 잔디밭이 천혜의 활주로가 됐던 셈”이라고 밝혔다.

4개의 다리로 된 높이 4m의 콘크리트 구조물 역시 관제탑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조 교수가 나가사키 오무라 해군 항공창에서 근무했던 가미치카씨를 만나 얘기를 들은 결과, 서로 상대방 비행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비행기도 많지 않은 시기여서 관제탑이 존재하지 않았다.

가미치카씨는 당시 알뜨르비행장에 관제탑이 있었다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당초 관제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관제탑으로 알려졌던 구조물은 광복 후 육군 제1훈련소에서 세운 급수대로 추정되고 있다.

조 교수는 “일본 마세아마시, 우사시 등 전쟁 당시 비행장이 있던 10곳을 방문했으나 알뜨르만큼 유적이 보존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현지 군 비행장은 종전 후 민간에 분양돼 대부분 주택이 들어섰다”고 밝혔다.

그는 “알뜨르 유적이 잘 보존된 것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소유해 민간에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6·25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로 활용됐고 이후 국방부 소유로 묶이면서 70년 전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본군이 도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군사시설을 조성하면서 전쟁 관련 유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며 “하지만 왜, 어떻게 전쟁이 시작되고 끝났으며 이를 통해 후대들이 평화에 대한 소중함을 갖기 위해선 유적을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알뜨르비행장과 같은 규모는 전쟁 당사국인 일본에도 없다”며 “제주평화대공원으로 조성해야 할 타당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말을 맺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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