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공 건축의 정형으로 자리매김
제주 공공 건축의 정형으로 자리매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8)제주시청사...6.25전쟁 당시 시공 후 준공...일제 건축 양식 배제 노력
제주시청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 8일 기공하고, 첫 삽을 뜬지 1년 후인 1952년 11월 30월 준공됐다. 당시에는 제주도청사로 건립됐다.

옛 제주도청사는 1980년 3월까지 28년 간 사용되다가 제주시 연동으로 청사를 이전, 제주시청사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제주시정 업무를 보고 있다.

원래 제주도청사는 1917년 초대 도사(島司)였던 이마무라 도모가 제주목관아 터에 조성한 일본식 목조 건물이었다.

1949년 1월 방화로 도청 별관이 잿더미가 됐고, 별관에 보관하던 양말 등 구호물자와 각종 서류가 소실됐다.

경찰은 4·3 초토화 작전 이후여서 무장대의 소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범인은 공무원이었다.

모 계장이 도박으로 많은 돈을 잃고, 구호품인 양말을 팔아 써버렸다. 이를 보충할 길이 없자 그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도청에 불을 질렀다고 자백했고, 곧바로 구속됐다.

화재로 제주도청사는 관덕정 인근으로 임시 옮겨져 이곳에서 3년 동안 업무를 보게 됐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 16일 새 도청사가 드디어 건립되면서 준공식이 열렸다. 역사적인 날에 도민들은 제주시 광양벌에 운집했다.

준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밴플리트 UN군 총사령관, 백선엽 육군 참모총장 등 정계 및 군부 최고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해 건물 낙성을 축하했다.

새 청사 부지는 3900평(1만3000㎡)에 건평은 451평(1500㎡)의 2층 벽돌조 건물로 지어졌다.

모든 기둥을 벽돌로 쌓아서 건물 기본 구조를 완성했다. 당시 전라남도 소속 공무원이던 주명록씨(1921~2002)가 설계를 했다. 시공은 허정 국무총리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중앙산업이 맡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낙성식에서 “공산주의의 목적은 파괴에 있다면 우리의 목적은 건설에 있으며, 제주도내 군·관·민이 합심해 훌륭한 건물이 지어진 것은 도민들의 건설 의욕의 발로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새 청사 이전을 놓고 유치전이 치열했다. 부지로는 우당도서관, 제주국제공항, 광양지역 등이 거론됐다. 광양지역 유지들은 넓은 땅인 ‘광양벌’을 내세워 청사 유치에 성공했다.

1950년 초 광양벌은 넓은 들판이어서 도청이 건립될 당시 청사 앞에는 공설운동장도 함께 들어섰다.

청사는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네오고딕 양식을 바탕으로 했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전시에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현실에서도 전형적인 한국 고유의 지붕 경사를 둔 것이 특징”이라며 “공공 건물의 위엄성과 권위성, 질서 및 간결·강직성을 표현했다”고 저서인 ‘제주건축’에서 소개했다.

원래는 채광과 통풍을 고려해 지붕에 다락창을 두었으나 개수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건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양상호 제주국제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일제 관청 건물의 전형인 삼각형의 지붕 출입문을 배제하고, 고딕적인 박스형 중앙 출입문(포치)을 두었음은 일제의 영향을 배제하려는 건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며 “이러한 특징은 이후 지어지는 제주 관청 건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건축적 정형(定型)이 됐다”고 밝혔다.

즉, 일제 건축의 권위주의적인 외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진 못했지만, 일제 양식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인데다가 이후 제주 관청 건물의 기본 모델이 됐다는 점에서 제주 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6·25전쟁 당시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했을 때, 정부기관을 제주도로 이전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정부청사(또는 청와대)로 활용하기 위해 건물이 신축됐다.

그래서 벽체의 두께가 1m에 달할 만큼, 대포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사진설명)=현 제주시청사와 옛 제주시청 모습. 6.25전쟁 기간 중에 완공된 창사는 제주 관청의 정형으로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좌우 대칭의 건축구조였으나 이후에 건물의 좌·우측을 확장했다.

(사진설명) 청사 낙성식=1952년 12월 16일 낙성식 장면. 중앙 출입문 위에 태극기와 유엔기, 미국 성조기가 걸려있다. 이날 낙성식에는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밴플리트 UN군 총사령관 부부 등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