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해안 5곳에 진지동굴 구축...일제 특공대원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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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상륙에 대비 자폭의 날 기다려
패색이 짙어지던 1945년 2월 일본방위총사령관은 이른바 결호작전을 수립했다.

미군 상륙이 유력한 본토 6곳과 본토 밖 1곳(제주)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는 작전이다. 1호는 홋카이도였고, 7호는 제주도였다.

일제는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거점으로 제주도를 선택, ‘결7호 작전’을 수행했다.

이 일환으로 특공병력이 증강됐고, 해안 진지동굴에선 자폭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에 배치된 특공병기는 ‘신요’였다.

앞서 일제는 15세 이상 소년병을 모집해 수상 특공전법에 대한 맹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을 마친 1기생은 오키나와 등에서 돌격을 감행해 전투 참가자 2288명 중 1636명이 전사했다.

이어 2기생은 본토 해안 등에 배치됐고, 3기생은 전원 자살공격의 명이 내려졌으나 종전이 되면서 임무 수행도 막을 내렸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다면 바다에는 신요가 폭탄을 싣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여력이 없었던 일제는 도요타 중고 트럭 엔진을 목선에 장착해 자살 공격보트 신요를 제작했다.

초기형은 1인승으로 뱃머리 쪽에 250kg의 폭약을 장착했다. 폭약은 충격을 받거나 전기가 흐르면 폭발하도록 했다.

키를 고정시키면 탈출도 가능했지만, 대다수가 확실한 전과를 올리기 위해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 해군은 종전 때까지 신요 6197척을 건조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엔진 추력을 높이고 폭약 적재량을 늘렸다.

제주에 배치되진 않았지만 카이텐은 1인승 어뢰정으로 잠항을 한 후 자살 돌격을 감행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시험 제작과정부터 실전 부대가 요구하는 병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카이텐에는 탈출 장치가 없도록 설계됐다.

즉, 해안 진지동굴은 자살 병기를 감추기 위한 엄폐된 격납시설이었고, 이곳에는 ‘최후 결전’에 대비, 특공대원들이 자폭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5곳에 구축된 진지동굴은 일제 침략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죽음의 강요되는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평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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