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은 꽃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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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접시꽃과 금잔화, 철쭉, 장미를 화분에 옮겨 심으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문득, 만일 이 세상에서 꽃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꽃이 없어진다면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해서 봄이 온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까. 또 아이들은 봄의 풍경에 무엇을 그릴까. 예전에 아이들은 봄 풍경을 그릴 때 꽃과 나비를 그렸다. 꽃이 없어져 버리면 하늘의 색으로 봄을 표현할 수밖에 없을게 아닌가.

꽃이 없어지면 ‘옛날에는 꽃이라는 것이 있었단다. 그것은 예쁜 것이었단다. 여러 가지 색, 여러 가지 형태의 꽃이 있어서 계절에 따라 새롭게 피고 지는 것, 번갈아 가며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해서 일년 내내 언제든지 어떤 꽃이든 피어 있었단다’하고 어린이에게 얘기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핀다’의 실체를 모를 것이다. 아이들은 “핀다라는 것은 말하자면 나타난다는 것인가요?”라고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타나고 소멸해 가는 것. 핀다는 말뿐만 아니라 진다는 말의 개념도 없어진다. 예를 들면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 순간에 저버리는 아름다움은 차라리 슬픔이었습니다’하는 표현을 아예 모를 것이다.

죽음은 소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죽음도 아름답지도 더럽지도 않다.

그러나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꽃이 지지 않는다면 꽃이 나타내는 정감을 모두 잃어버릴 것이다. 꽃은 시들고 지는 것에 의해, 사람의 마음에 정서와 여유를 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꽃이 지기 때문에 인간은 꽃을 사랑했다. 꽃이 지는 것이 애석해서 물을 주기도 하고 바람을 통하게 하고 꽃을 손질하며 애써 왔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사람의 생활에 여유를 주었다. 만일 꽃이 없어진다면, 계절이 아마 꽃 대신 과일과 야채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전에는 계절마다 야채나 과일의 구별이 뚜렷했다.

지금은 다르다. 계절에 상관없이 야채와 과일이 풍성해서 인간의 감각도 뒤바뀔 정도가 되어 버렸다.

동요도 그렇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꽃이 없어진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선흘 쪽으로 드라이브하다가 차를 세웠다. 들장미가 이리저리 엉켜서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엉킨 가지 사이로 빼꼼히 이름 모를 보랏빛 들꽃이 피어있는 게 아닌가.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거기에 피어 있는 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고 말았을 텐데. 이게 꽃이 주는 환희다.

꽃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불행이다. 일상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일은 꽃을 사다가 꽂아 놓은 것만이 아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김가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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