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회정화운동의 회오리 제주사회 덮쳐
(19) 사회정화운동의 회오리 제주사회 덮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제 해직`삼청교육 암울...각급 기관 신제주 이전도 잇따라

신군부 세력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1980년 여름은 싸늘하게 얼어붙어갔다.


제주도민을 포함한 국민들은 정의로운 사회 구현과 새 사회 건설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사회정화운동에 동원되기 시작했고, 제주사회는 연일 사회악 일소 캠페인으로 뒤덮여갔다.


이 과정에서 공직과 언론계 인사들이 거리로 쫓겨났고 무고한 시민들이 삼청순화교육 대상에 포함돼 인권이 짓밟혔다.


같은 시기 신제주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제주도청을 비롯한 각급 기관의 이전 행렬도 줄을 이어 신제주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회정화운동의 회오리=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일원으로 확대·선포됐다.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통해 10·26 사건 이후부터 계속돼 온 ‘서울의 봄’을 막 내리고 빛고을 광주를 격리해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했다.


신군부는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를 통해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그 실체를 드러냈다.


국보위는 그 해 여름부터 안보 강화, 경제난 타개, 정치 발전과 내실화 도모, 사회악 일소를 명분으로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권력형 부정축재자 조사를 시작으로 학원 소요 및 노사 분규 배후 조종·선동 혐의자 일제 검거를 통해 수많은 정치인과 민주 인사를 탄압한데 이어 7월부터는 공직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숙청 작업을 주도했다.


제주에서의 공직사회 숙청 바람은 도정 최고 책임자인 박상열 지사가 부임 5개월도 채 되지 않은 7월 9일 해임되고 이규이 지사로 교체되면서 시작됐다.


9월말까지 행정공무원만 19명이 쫓겨났으며, 제주지검·제주지법·제주교육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7월 말부터는 국보위의 정화계획에 따라 농협과 수협에 대한 숙청작업이 이뤄지면서 24명이 강제 해직됐다.


이처럼 제주에서 희생된 공직·조합 관계 인사는 경우만 해도 60여 명에 이른다.


언론계의 경우 자유언론실천결의문을 채택해 사전 언론 검열 거부한 데 대한 보복으로 자율 정화란 미명 아래 선별적인 보복이 가해졌는데,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聞의 경우 기자 6명이 강제 해직되는 등 그 피해가 컸다.


사회악 일소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고한 도민들을 삼청순화교육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국민 주권과 인권을 짓밟고 유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해 8월 4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모슬포의 해군부대에서 운영된 특별순화교육대에는 일제 검거령을 통해 영장 없이 검거되고 재판도 없이 제주지역 군경합동수사반에 의해 사회악사범으로 지목된 도민들이 수용됐다.


사회악 사범이라기보다는 경범죄 위반자가 많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범죄자 아닌 범죄자로 낙인 찍혀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개과천선을 목적으로 무차별적인 훈련과 가혹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1989년 1월 20일까지 삼청교육 피해신고를 접수한 결과 제주에서는 24명이 신고했는데, 이 중 4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교육을 빙자한 가혹행위가 얼마나 혹독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삼청교육훈련 중 사망자 50명 가운데에도 제주 출신이 1명 포함됐다.


삼청교육에 끌려간 도민 수는 피해자들의 피해 의식 때문에 신고조차 꺼린 경우가 많아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수백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聞은 1981년 3월 13일자 보도를 통해 삼청순화교육 이수 후 귀가자는 202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앞서 1980년 9월 4일자 보도에는 27명이 1차로 전방부대 근로봉사대로 보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각급 기관 신제주 이전 잇따라=1977년 신제주 건설이 시작된 이후 새로운 시가지를 조기에 조성하고 기존 시가지의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신제주 이전이 결정됐다.


1980년 3월 12일 제주도청이 신제주 새 청사에서 업무를 개시한 것을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행정기관과 정부투자기관, 학교의 이설·신설 등이 잇따르면서 본격적인 신제주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제주도청이 광양시대를 마감하고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는 4.5t 트럭 500여 대분의 비품과 서류가 옮겨졌다.


5월 23일에는 제주도경 청사 준공식도 열려 관덕정 시대를 접고 신제주 시대에 동참했다.


4월 22일에는 남양문화방송(현 제주 MBC)이 현 위치에 새 사옥을 준공했는가 하면 지난해 도남동 신사옥으로 옮긴 KBS 제주 역시 그 해 10월 20일 신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교육기관의 신설·이설도 잇따랐다.


제주중앙중은 한발 앞선 1978년 현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제주도교육위원회(현 제주도육청)도 1979년 12월 18일 이전했다.


1980년 5월 1일에는 신제주초등학교가 개교했으며, 1983년 제주제일고의 이설로 신제주지역에 초·중·고교가 모두 들어서게 됐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