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카 시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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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5년, 국내에서 생산된 첫 자동차가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은 ‘시발(始發)’이다. 된소리로 발음하면 욕설이 된다. 한자어로 ‘처음 시작한다’는 뜻이다. 자동차 앞면 우측에 ‘시-바ㄹ’이란 로고가 새겨져 있다. 미군들이 남긴 폐차 부품을 재생하고 드럼통을 두드려 차체를 만든 지프 형태였다.

그해 총 7대가 만들어 졌다. 말 그대로 ‘굴러만 가는 깡통차’나 다름없지만 부유층 사이에선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제 날짜에 차량을 인도받지 못하면 고객들이 회사 사무실에 몰려와 소란을 피울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시발차를 사기 위해 부녀자들이 시발계(始發契)란 모임까지 결성했을까.

▲차(車)가 흔치 않았던 1970년대 때까지 자동차는 부(富)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뿌연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동차 뒤꽁무니를 따라 달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후 88 올림픽과 3저(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호황 등으로 20년도 채 안돼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어느덧 이제는 ‘차 없이 살수 없는 시대’가 됐다.

▲도내 차량 증가 속도가 무섭다. 올 들어서만 벌써 5만대 이상 늘어 자동차 등록대수가 43만대에 다가선 것이다. 전 차량을 일렬로 세우면 그 길이가 2000여 ㎞에 이른다. 도일주(181㎞)를 11번하고도 남는 거리다. 세대당 1.7대를 넘어 전국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운전하지 못하는 노인층 일부와 아동ㆍ청소년 등을 빼면 대부분 마이카(My Car)를 굴리고 있는 셈이다. 1946년(113대)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차량 등록대수는 2004년 처음으로 20만대를 돌파했다.

그러고는 9년 뒤인 2013년 30만대를 넘어섰다. 한데 2년 만인 지난 4월 말 40만대 시대를 열었다. 경이적인 기록 행진이다.

▲차량이 급증하는 만큼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그중 교통 체증 심화와 주차난 가중은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도심지 웬만한 곳은 출ㆍ퇴근 시간은 물론 낮 시간대에 차량 통행이 끊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차량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정체 현상이 빚어지곤 한다.

주차난은 일상의 불편을 넘어 치유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밤낮 구분없이 상가주변이나 이면도로, 주택가 골목길 등은 온통 주차장이 되다시피 한다.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하루하루가 거의 전쟁과도 같다. 조금만 늦게 퇴근하면 온 동네를 몇 바퀴를 돌아야 한다. 오늘은 일찍 퇴근 해야겠다.

고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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