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영주산-제주에 부는 모진 바람을 산이 된 여인네 혼자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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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딸과 가난한 총각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전해져
완만한 비탈 사이로 펼쳐진‘천국의 계단’관광객에 인기
▲ 영주산은 등산로를 찾기 쉽지 않은 산이다. 등산객들의 발자취를 따라 풀을 헤치며 올라야 비로소 정상 능선과 연결되는 천국의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정상 능선과 이어진 동쪽 비탈 모습.
제주는 지역마다 다양한 전설이 있다. 또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지역의 자연환경에 따라 전해진다. 더욱이 산세가 높고 산수가 수려한 오름이 자리한 지역의 경우 내려오는 이야기는 사연이 깊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마을에는 신선이 살아 신령스럽다는 오름이 뒷동산처럼 자리했다. 오름의 이름은 영주산이다. 영주산에도 구구절절한 전설은 전해진다.
 
▲ 영주산 정상으로 가는?‘천국의 계단’.
영주산은 부잣집 딸과 가난한 총각의 애틋한 사랑이 서린 곳이다. 부잣집 딸에게 첫 눈에 반한 총각이 홀어머니를 소홀히 하자 괘씸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은 부잣집 딸과 총각을 마을에서 쫓아냈다. 마을을 떠나던 부잣집 딸과 총각은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을 맞고 딸은 산(영주산)으로, 총각은 바위(무선돌)로 변했다.

애처로운 사연 탓일까. 오름은 스토리와 연결돼 각별해진다. 정상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뻗은 능선과 능선 안쪽으로 움푹 패인 말굽형의 굼부리는 여인네가 두 팔 벌린 모습이다. 산이 된 여인네는 자신이 살았던 마을로의 귀거를 꿈꾸듯 성읍마을을 품고 있다. 영주산은 이미 성읍마을 주민들에게 수호신 같은 존재다. 산과 바위가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영주산 봉우리에 안개가 끼면 비가 내린다는 속설까지 있다.

영주산의 또다른 이름은 영모루다. 한자로는 영지(靈旨·瀛旨)로 표기되다가 발음이 비슷한 ‘영주’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 또한 영주산은 중국설화에 나오는 삼신산인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 한라산(영주산)의 하나로 한라산의 분신이라는 데서 그 별칭이 쓰여 졌다는 설이 있다.

영주산은 등산로를 찾기 쉽지 않은 산이다. 오름 입구 옆 계단으로 오르면 동쪽 비탈로 탐방을 시작하게 된다. 비탈은 완만한 풀밭으로 정해진 길은 없다. 어느 곳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풀밭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목장을 지나 등산객들의 발자취를 따라 풀을 헤치며 오르면 정상 능선에 닿을 수 있는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나무로 설치된 계단은 영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미 관광객들에게는 ‘천국의 계단’으로 알려진 곳이다. 계단 끝으로 보이는 것은 하늘뿐이고, 계단을 오르다보면 오름 주변에는 광활한 초원만이 펼쳐진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면 아마 영주산 정상으로 가는 오름이 아닐까. 이 ‘천국의 계단’은 초여름 보랏빛 산수국이 능선을 수북이 덮었을 때 신비로움을 더한다.

계단 끝 해발 326m 지점. 영주산 정상에는 산불 감시용 경방초소, 소와 말을 돌보기 위해 망을 보는 막사가 있다. 천국이라 하기에는 흉물 같은 모습이지만 요즘 같이 따가운 햇볕에는 쉬어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정상 아래로 성읍마을과 성읍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고, 초원 멀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희미하게 떠 있다. 

계단 반대편 내려오는 길은 소나무와 삼나무 등 각종 나무숲이다. 경사면은 가팔라 미끄러지기 쉬워 등산로에 연결된 밧줄을 잡고 조심히 내려와야 한다. 남쪽 기슭에는 성읍리 공설묘지가 조성돼 있다. 산행은 총 1시간20분 정도 소요된다.
▲ 성읍리 공설묘지에서 바라 본 영주산 전경.
무더위 날씨에도 바람 많은 영주산은 시원하다. 영주산 주변은 바람을 가로막는 무엇 하나 없다. 영주산만이 모든 바람을 맞고 있다. 산이 된 여인네 혼자서 그 모진 제주의 바람을 막고 있다. 무엇을 지키려는 것일까.
 
 
 
성읍민속마을
 
조선시대 정의현청 소재지
옛 마을·주거 모습 보존돼
 

성읍을 대표하는 관광지라 하면 ‘성읍민속마을’을 빼 놓을 수 없다. 전형적인 옛 제주의 마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성읍민속마을은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84년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제로 지정됐다.
▲ 영주산 정상 아래로 펼쳐진 성읍저수지.
성읍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제주도의 세 지역(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중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로 마을은 성곽을 비롯해 일관헌(日觀軒·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청사)과 명륜당(明倫堂·유생들의 교육 장소), 대성전(大成殿·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 등 유적이 남아있다. 마을 안 가옥들도 안거리와 밖거리, 돗통시 등 제주 전통 주거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또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와 생동감을 더한다.
▲ 성읍민속마을에 보존된 제주의 전통 가옥.
마을은 해마다 가을이면 정의골 민속한마당축제를 통해 정의현감 행차 재현, 국악 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임주원 기자 koboki@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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