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
천도재
  • 제주일보
  • 승인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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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죽은 이의 넋을 달래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자신의 만족과 부족했다는 반성으로 다음을 기다리는 영혼의 세계에서는 누군가의 정성으로 변할 방법은 없다고 자신한다. 다만 영적 교감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면 미처 풀지 못한 억울함이나 남기고 싶은 말을 전하고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자는 하소연이다.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놀랄 만큼의 정확성과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상상이나 누군가의 개입으로 이러한 현상을 만들 수 있지만, 중간역할에서 굳이 거짓이냐 참이냐 의심은 지워낸다.

공통점은 이 자리를 만든 이가 누구냐? 처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자신을 불러준 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당사자 혼자 올 때가 대부분이지만 동반자가 따라올 때가 있는데 친인척 관계에 있었거나 남의 집 손님처럼 불청객도 있다. 각자의 사연이 있어 들어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보태는 편이고 부탁이나 애틋함에 서로를 위로한다. 만약 가족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면 지명까지는 몰라도 멀고 가깝다, 주변에 낮은 산이나 하천이 보인다는 등 비교적 주변 상황을 소상히 알려준다. 자살을 택했다면 어떤 이유이고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설명한다. 절대 피해야 했던 순간이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 가슴 치는 후회를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에 혀 차는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어리석음은 대부분 반복의 연속이며 스스로 만든 고통임을 알아야 한다.

뜻하지 않은 죽음이 타살인 경우에는 무척 복잡하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찾아오신 분이 잊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석연찮은 의문이 남아 궁금함을 풀어달라기에 어떻게 돌아가셨냐고 물으니 사업에 실패한 후 몸을 의지할 곳이 없어 작은 암자에서 허드렛일 눈칫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위에서 떨어졌단다. 모진 목숨을 그렇게 하직했나 생각이 들었지만 딱해 보여 망자를 불러내니 다른 귀신이 붙어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 둘은 전생에 막연지기였는데 일방적인 배신으로 자신도 이와 같은 죽임을 당한 적이 있어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줬단다. 물론 이들은 생면부지였으나 과거의 잘못이 우발적인 싸움을 만들었다. 좋은 말로 마무리를 했지만 개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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