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벽두(劈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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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황금돼지해다. 동창 열고 새벽 서기(瑞氣)를 한껏 방안으로 들이니, 정신이 청랑하다. 제주新보 독자 제위께 옷매무새를 고쳐 앉아 큰절 올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절은 존경과 간절함에서 나온다. 절을 올렸으니 마음 열고 격의 없이 다가가려 한다.

기해년(己亥年)은 황금돼지해다. 천간의 己(기)가 土(토)에 해당하니 색으로 치면 노랑, 곧 황금색이 된다. 예로부터 돼지는 뭔가 달랐다. 가축으로 친숙할 뿐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제물이자 복과 재물의 근원으로 꼽혔던 것이다. ‘복 돼지’, ‘돼지꿈’이란 말에 전통적 관념이 녹아 있고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돼지가 게으르다는 건 편견이다. 추한 것 같아도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누울 자리를 깨끗이 유지하려 하고 대소변을 가릴 줄 아니 꽤 영리한 구석이 있다. 워낙 다산이라 부(富)를 갖다 주는 길상의 동물이기도 하다.

나는 기해 첫 아침에 자신과 철석같이, 아주 단단히 약속했다. 무슨 거창한 약속이 아니다. 다들 습관처럼 돼 있는, 말은 앞서되 실천이 따라주지 않는 것. 올해엔 결코 ‘작심삼일’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굳건한 언약이다. 글쓰기에 더욱 정진하자고 작심했다. 사람마음같이 간사한 것이 없다. 나는 내 마음이 그러한 줄 잘 알고 있다.

작심삼일, 굳게 마음먹은 게 사흘이 채 못 간다는 말이다. 오죽 실천이 힘들었으면 그렇게 꼬집어 꾸짖을까. 또 새해를 맞았으니 나잇값 하자고 자신을 닦달하지만, 나도 여염의 범상한 사람들에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 만날 작심삼일 하는 범부일 뿐이다. 죽 삼시 밥 삼시 오랫동안 그러면서 살아 왔음을 실토한다.

담배를 끊자, 과음하지 말아야지, 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려 산에도 가고 낚시도 같이하자, 부모님을 봉양하자, 아내를 위해 줘야지, 집안일에 내 역할을 하자, 해 놓고선 흐지부지하기 일쑤였다. 사람마음이란 쉽게 변하는 것, 돌덩이 같은 결심도 끝까지 지켜나가기가 힘들다. 그게 회한으로 쌓여 한숨이 돼 나오곤 한다.

작심했으면 와신상담(臥薪嘗膽)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말인가. 부러 섶나무 위에서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겼다는 고사성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는 독한 결심이 담겨 있는 말이다.

새해 벽두(劈頭)다. 벽(劈)은 쪼갠다는 뜻이니 한 해를 쪼갠 첫머리란 얘기다. 첫머리라 설렌다. 벽두엔 첫걸음에 마음 들뜬다. 그러다 작심삼일이 되고 마니 문제다. 습관으로 몸에 배지 못한 때문이다. 습관이 안되면 시도는 유야무야에 그치고 만다. 그 시도란 게 나중엔 어쭙잖은 저항감으로 온다. 결국 삶의 주체인 ‘나’를 설렘으로부터 해방시켜 버린다.

다이어트, 시험공부, 연애, 운동, 글쓰기 어느 하나인들 예외일까. 다잡아 작정한 게 싫어지는 저항감, 그걸 이겨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버티는 시간을 참아야 하는 것이다. 익숙한 행동으로 정착되려면 백일이 지나야 한다고 말한다. 아기 백일사진엔 의미가 숨어 있다. 습관이 됐을 때라야 자연스럽다. ‘삼일’은 갖다 댈 것도 아니다.

나는 글쓰기를 습관으로 길들이고 싶다. 보다 치열하게 쓴다고 기해 벽두에, 자신과 언약했다. 독자 여러분! 이 기해년에 부디 작심삼일랑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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