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담, ‘손댄 듯 안 댄 듯’ 시간에 내맡겨진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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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담, 지혜 산물이자 기억의 장소…조상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대상
민중미학의 대지예술 조형물…지형 이용해 ‘비례의 안정성’ 있어
필자 김유정이 2019년 1월 오름의 산담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유정의 산담기행은 본지서 매주 연재해 11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필자 김유정이 2019년 1월 오름의 산담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유정의 산담기행은 본지서 매주 연재해 11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산담기행이 매주 연재해 110회에 이르러 마지막회를 쓰고 있으니, 2년이 훨씬 지난 셈이다.

무릇 만남에는 이별이 있듯이 인간사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먼저 산담기행을 아껴주고 그동안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신 제주보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산담기행을 연재하면서 그동안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여러 문중의 어르신들, 장묘문화 관련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이번 연재에 누락되신 분들께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어 죄송할 따름이다.

더불어 제주보와 편집진, 독자위원회 여러분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산담이 보여준 상징들

무릇 생과 사가 인간의 양면적 모순 관계에 있어 누구도 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인생에 가장 큰일이 탄생과 죽음이다.

그런 덕에 탄생은 사람들에게 환희와 희망을 주었고 죽음은 절망과 큰 비통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신화와 역사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화의 교감적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대단한 것도, 무시할 것도 아닌 우리가 살아갔던, 살아가는 서사이자 흔적일 뿐이다.

부정하더라도 죽음은 우리에게 늘 공포를 동반한다. 삶은 현실에서 확인 가능 한 감각적 실재이기 때문에 죽음만큼 공포스럽지가 않다.

반대로 죽음은 그야말로 이성적으로 확인할 수 없이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불가지(不可知)이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그래서 죽음의 문화는 강렬하고 선명하여 죽음이 있는 한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죽음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 종교의 본질일 수도 있다.

제주의 죽음 문화에 대한 비중을 쉽게 알 수 있는 산담의 특성을 네 가지로 정리해본다.

공포를 반감시키는 지혜의 산물-

먼저, 산담은 나쁜 감정을 잊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기도 하다. 바로 공포를 반감시키는 산 자들의 기획인 것이다.

물론 산담의 형성 과정은 다양한 사회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시신을 처리하고 보호하는 방식으로, 조상숭배에 의한 권력의 방식으로, 또 공동체의 결속과 화합을 위한 이데올로기 전파 기능으로, 그리고 사회적 위계와 문벌의 권위를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내면에는 죽음의 공포를 숨겼거나 그것을 충효로 활용한 조선왕조의 통치적 이념이 들어있었다.

조선 왕조의 가장 기발한 체제 유지의 방법이었지 모르지만 제주사람들은 저승을 멀리 상정하지 않고 경작지 안에 산담을 두면서 조상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산 자로 대우했다.

이럴 때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집안 어른으로 남아 말을 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세태를 반영하는 쓰러진 비석의 모습.
세태를 반영하는 쓰러진 비석의 모습.

기억의 장소-

산담은 기억이 장소이기도 했다. 죽은 자도 산 자인 때 삶의 기억을 남긴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남은 자손의 몫이기도 하지만 그 기억은 다시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 기억이 잊을까봐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의 내 삶도 이후에 똑같이 죽은 자가 될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대비하는 방법을 삶에서 저절로 배운다.

전통은 스스로 필요에 의해 생기는 행위의 산물이고, 그 문화는 그것의 습속인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훌륭한 정보이다. 문명은 바로 이 기억들이 모인 성과이다.

사람들이 장소를 떠올리며 지난 일들을 기억하며 희비(喜悲)의 감정을 갖는다.

기억은 단순히 묘비보다도 더 구체적인 사실을 알게 해준다. 묘비라는 것은 하나의 다른 기억의 형식일 뿐이어서 오랜 세월이 흘러 최소한의 정보를 남기지만 당대의 산담이나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은 매우 구체적인 죽은 자의 영상과 스토리를 알려줄 수가 있다.

그러나 시간의 힘은 지우개와 같고, 더 오랜 시간은 백지와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형물의 힘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한 자기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누군가가 그것을 치우지 않는다면 그것에 자신의 기억이 매달려있어 영원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형물로서의 산담-

산담은 죽은 자를 위한 조형물이기 때문에 기념비성을 갖는다.

기억과 망각은 생명체인 사람에게 생존의 체계이기도 하다. 영장류인 사람에게 기억이 필요한 때, 망각이 필요한 때가 다르다.

개인마다 그 내용과 편차는 다를지라도 적어도 삶에 유용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의식적으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양자(기억과 망각)의 경중(輕重)과 선택을 활용해야만 한다.

조형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전통적 이유를 보면, 대개 무덤 보호와 경계 표시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 기억의 장소로서의 기념비성이라고 생각한다.

무덤의 보호는 기본적으로 부모, 조상 사랑에 대한 효의 표시이고, 그런 사랑의 결과는 무덤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덤 보호의 기능을 넘어서서 사회적 표지(標識)로서 조형물이 더 커져야 하고 잘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민중미학의 대지예술-

민중미학이라면 민중의 힘에 의해 스스로 완성된 미적 의식을 말한다.

다분히 계급적이고, 신분에 영향을 받는다. 민중미학이라면 격식이 없이 천민, 평민, 낮은 품관에 이르기까지 선호하고 서로 통용되는 미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산담은 왕실의 무덤과는 너무나 달라 왕실에서 보기에 모든 백성들이 즐겨 만드는 양식임이 분명하다.

민중미학이란 생활에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생활미를 뿌리로 삼기 때문이다.

바로 산담이 더 제주적인 것은 이 민중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산담이 대지예술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예술 개념만 서양에서 시작되었을 뿐 이미 우리는 조선시대부터 이 예술형식을 유행시켰다.

서양의 대지예술이 개인의 플랜이라면, 산담은 공동체가 모다든(뭉친) 집체적 프로젝트였다.

산담의 형태를 잘 관찰하면 지형을 이용한 모양과 높낮이, 봉분 모양에 따른 형태와 선의 동세(動勢),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이녘 만썩(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용적(容積)과 체적(體積), 비례의 안정성과 기울기의 진퇴(進退)가 있다.

또 산 자들의 주택 구조를 차용한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생활관을 반영하고 있어, 공간 영역이 분리되기도 하지만 합쳐지기도 한다.

산담의 시간과 공간의 분리·구획되는 것은 마치 안거리 밖거리 양택 문화와 이웃과의 거리두기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산담은 제주인의 자연관이랄 수 있는 손댄 듯, 안 댄 듯이 시간에 내맡겨져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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