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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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기생충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번식을 위해 숙주를 죽음으로 이끈다고 한다. 쥐에 기생하다가 고양이에게 옮겨야 할 때가 되면 쥐를 고양이에게 먹히도록 조정하고, 물에 알을 낳는 기생충 알은 유충으로 부화해 하루살이나 모기에게 먹혀서 어른벌레가 되고, 그 다음 하루살이나 모기가 사마귀, 귀뚜라미 등에게 잡아먹힐 때 그들 몸속으로 옮겨가 물에 알을 낳기 위해 숙주인 사마귀나 귀뚜라미를 물로 뛰어들어 죽게 한다.

개미 몸에서 유충 시기를 보내는 기생충은 개미를 조정해서 풀에 엎드렸다가 풀과 함께 소에게 먹히게 하여 소의 몸으로 옮겨간다. 소의 몸속에서 성충이 알을 낳으면, 알은 배설물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다시 개미에게 들어간다.

또 다른 개미 기생충은 알 낳을 때가 되면 개미의 배를 긁어서 피부를 얇게 만들고, 개미를 나뭇가지에 올라가 배를 추켜세워 햇빛에 붉게 비치도록 한다. 열매로 착각한 새가 개미를 먹으면 새 몸 안에서 알을 낳고 새똥으로 알들이 나오면 개미들에게 기생한다.

새의 장내에 사는 또 다른 기생충은 배설물에 섞여 알이 나오면서 달팽이에 기생한다. 달팽이 몸에서 성충이 되면 달팽이를 새들 눈에 잘 띄도록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하며, 달팽이 더듬이의 색깔을 발하게 하면서 움직이게 한다. 꿈틀거리는 더듬이를 애벌레로 알아서 새가 먹고, 기생충은 다시 새의 내장에서 살며 알을 땅으로 내보낸다.

메디나기생충은 물로 감염되는데 사람의 다리에 기생했다가 산란할 때가 되면 열이 나도록 해서 사람이 물속에 다리를 담그도록 만들어 목적을 달성한다고 한다. 이 기생충의 학명은 ‘작은 용이 아프게 한다’는 뜻이라니,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몸속에 들어와 살면서 행동을 조정하기에 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우리 내면에 숨어서 교묘하게 조정하는 용들은 기생충 못지않게 다양할 것 같다. 가장 밀접하게 얽힌 가족 관계에서도 기생과 노동 착취가 벌어지고, 효도와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때로는 일방적으로 자녀들의 헌신이 강요되거나, 아내들의 희생이 당연시되기도 한다.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보다 가족의 존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세대들도 과거에는 수 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곡된 주장과 신념에 현혹되어 엉뚱한 집단을 따라 가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갈 신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산다면 기생충에게 조종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태양의 자손임을 자처하며 금과 은으로 몸을 두르고 영생의 집을 건설하도록 백성들을 몰아대던 파라오들과 비길 만큼 망상에 가까운 자아도취는 어떤가.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의 뇌에 자아의 허상을 각인시켜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영화와 번영을 누리고, 죽어도 죽지 않겠다고 그 주검의 이마에 별빛을 받으며 영생을 꿈꾸던 과거의 유령은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는가, 아니면 기생충 알처럼 계속 부화하고 있는가.

인간에게 기생하여 인류를 지배하려고 드는 영화 속 외계인의 실체는 인간 집단 속에 파고든 이기심과 물욕인지도 모른다. 사치와 풍요의 환상을 그리며 금송아지를 따르는 욕심은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 속으로 침투하여 조종하는 기생충일 수 있다. 이 기생충은 기계처럼 무자비하게 행동하면서 생명을 가볍게 여기도록 하고 드디어는 스스로 자멸하도록 교묘히 우리들을 조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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