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단상-독일의 기억문화를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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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과거 기억이 모이고 이것을 공유함으로써 한 국가의 역사가 되고 세계사가 된다. 기억이 있는 한, 인간은 싫든 좋든 역사를 인식하며 살아간다.

인류 역사 중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2년 전 11월, 독일 과거사청산(홀로코스트) 사례 견학을 간 적이 있다. 당시, 처참한 학살의 흔적들을 보면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마음을 다잡아 그 기억을 되살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리고자 한다. 더불어, 홀로코스트를 대하는 독일의 기억문화에 대해서도 반추해 본다.

첫 번째 기억, 독일 베를린의 중심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광장(학살유대인 추모공원)이다. 이곳에는 크기가 다른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2711개가 늘어서 있었다. 이 구조물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자 관을 상징한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족히 축구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넓어 보였다. 이곳은 피해자들의 추모공간이기도 하지만, 독일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범죄행위의 치부를 그대를 드러내는 전시장이기도 하다.

두 번째 기억,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다.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가장 끔찍한 수용소로 알려진 곳이다. 생체실험실에는 피가 흘러내리지 않게 고안된 포물선 모양의 실험대가 있었다. 그 위에 피부를 떼어내고 장기를 절단했던 각종 도구가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생체실험으로 죽고, 굶어 죽고, 관리자들이 충동적으로 죽이고 이렇게 죽어 나간 이들을 태웠던 소각장도 있었다. 총 6기의 소각장에서 하루에 400여 구의 시체를 소각했다고 한다. 여전히 소각장에는 시체 타는 냄새가 나는 듯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함께 갔던 일행들은 말을 잊지 못했다. 그저 붉어진 눈을 서로 애써 피할 뿐이었다. 인간이 자행한 극악무도함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악행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세 번째 기억, 슈톨퍼슈타인이다. 베를린을 걷다 보니 곳곳에서 손바닥 크기의 동판이 눈에 띄었다. ‘걸려서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슈톨퍼슈타인이다. 이 동판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강제 이송되기 전에 살았던 집 앞의 인도에 박혀 있었다. 길을 걷다가 동판이 발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리고자 함이다. 독일인들의 사과와 반성, 진정한 추모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견학 중, 독일의 무한한 뉘우침의 자세에 감동도 받았지만, 그들의 야만적 실체를 마주하고 분노와 처참한 심경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가해자인 독일인들이 피해자 유대인들보다 더 절박하게 이 처참한 역사를 기억하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자는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처절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이 끔찍한 역사를 반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독일은 잘 알고 있었다. 과거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있었기에 독일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글을 마치며, 우리의 5·18, 제주 4·3 문제 등을 독일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 여전히 핵심은 풀지 못한 채 주변만 빙빙 맴돌고 있다. 차마 밖으로 꺼내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독일의 기억문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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