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리(距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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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득실거려 세상이 생난리다. 어찌나 이악한지 오대양 육대주를 제멋대로 누비고 있다. 인간을 우습게 여겨 아주 나대는 판국이다. 빈대를 박멸하던 그런 약은 나오지 않나. 인간이 뽐내던 과학도 허탈감에 빠졌다.

사람들이 손 놓고 멈추고 갇혔다. 장보러 나가다가도 주춤한다. 교섭이 끊기고 다반사까지 내려놓았다. 인간이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나. 최첨단 의술도 현미경 속에서 고물거리는 고것들 앞에 쪽 못 쓰고 주저앉았으니 한심스럽다. 유럽을 휩쓸며 급기야 미국에 상륙, 며칠 만에 초대강국이라는 나라 체신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전 세계 감염자가 몇 십만, 사망자가 몇 만에 이른다니, 미증유의 사태에 경악한다.

대한민국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대체로 촘촘했고 방역활동도 정면 승부로 치열했다. 지금도 여전히 조직적·체계적·공격적이다. 이 성공적인 방역 시스템을 향해 롤 모델로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신천지라는 뜻밖의 암초에도 넘어지지 않았다. 대구·경북이 집단 감염으로 쑥대밭이 된 끔찍한 추이에도 시종 흔들림이 없다.

방역 현장이 또 감동이다. 의사, 간호사, 구급요원들의 몸을 던진 희생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한 편의 휴먼드라마다. ‘한 사람이라도 감염을 막자, 한 사람이라도 사망에 이르면 안된다.’ 그들 불꽃 투혼은 차라리 사투다. 피 흘리는 전투에 덜하지 않다.

너나가 따로 없다. 국민적 대응체제가 작동하지 않고는 수습할 길 없는 비상난국이다.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외출 삼가기 등 지침이 캠페인으로 전개되면서 권장하는 게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이다. 너와 나의 거리, 물리적 거리, 정서적 거리, 도농의 거리란 말은 귀에 익숙하지만 사회적 거리는 좀 낯설다. 딴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형성되는 인간 감정의 친소감(親疏感)이란 뜻으로 방역에 필수적 준칙으로 뜨고 있다.

친구 사이와 버스·지하철에서의 인간관계를 비교하면 친구 쪽이 훨씬 가까운 인정의 거리다. 친근감이 사라지면 집단 결합의 끄나풀이 이완되면서 그 집단과 조직이 해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관계로서의 거리가 멀어진 데서 생기는 불화이고 불상사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 방역을 위한 목적 있는 인위적 장치다.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범시민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역 내에 감염자가 있음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지 않고 하는 방역은 무의미하다는 데 근거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미뤄 온 초·중·고 개학이 무기한 연장됐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 못 나가고 계속 집에 갇힌다. 수업일수는 채워야 하니 불가피하게 내놓은 게 원격수업이다. 학교의 생활방역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이동수업, 화장실 이용, 급식, 친구 간 긴밀한 소통, 어느 하나 마음 놓지 못한다. 더욱이 발달단계에서 활발한 특성을 띠는 시기라 불안하다. 네 번째 개학 연기는 어쩔 수 없어 짜낸 고육책이다. 어느 부모가 마음 놓고 제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는가. 살얼음을 딛고 선 심경이리라.

나라를 안정시키려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화해야한다. 코로나에서 벗어나기 위한 서로 간의 거리, 우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생명의 거리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멀진 않고 눈짓으로 말할 수 있게 놓인 아름다운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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