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흘러가며 지친 마음 어루만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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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외도 월대천(上)
빗소리와 함께한 공연
가슴에 응어리졌던 묵직함 풀어놔
고은作, 달빛 아래
유월을 알리는 바람난장은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다 갑자기 폭우로 바뀐 아침에 펼쳐졌다. 어쩔 수 없이 외도 월대천 풍경을 지그시 눈 속에만 담고 인근 카페로 향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가 오히려 공연의 운치를 더하면서 이내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했다. 고은作, 달빛 아래

빗소리에 상처도 근심도 내려놓고

산수국이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빗줄기 사이로 간간이 사색이 끼어들어 눅진눅진한 안개가 한라산 너머로 자욱하게 퍼진다. 유월을 알리는 바람난장은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다 갑자기 폭우로 바뀐 아침에 펼쳐졌다. 어쩔 수 없이 외도 월대천 풍경을 지그시 눈 속에만 담고 인근 카페로 향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가 오히려 공연의 운치를 더하면서 이내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했다.

외도 월대천은 제주시 서쪽 방향 외도동에 위치해 있다. 외도라는 표지판과 함께 월대천 다리가 보인다. 월대천은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길이지만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넘쳐 담수와 만나는 또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1급수에 산다는 은어와 숭어,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오백 살이 넘은 팽나무와 이백 살이 넘은 소나무가 하천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어 산책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조선시대에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에서 시문을 읊고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지는데.

전병규님의 소금연주 ‘사랑’이 심장으로 촉촉하게 스며든다.
전병규님의 소금연주 ‘사랑’이 심장으로 촉촉하게 스며든다.

아마 이런 연주가 들려오지 않았을까. 전병규님의 소금연주 사랑이 심장으로 촉촉하게 스며든다. 젊은 날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마음도 사랑으로 버텼다. 집 한 칸 없이 월세를 살면서 올망졸망 아이들을 키우던 과거를 소환하고 추억을 불러들이는 음악. 우수에 젖은 심금이 빗소리에 녹아들어 여기가 월대천인지 꿈속인지 모를 지경이다.

김정희와 시놀이팀(이정아, 이혜정, 장순자)에서 이문재 시인의 ‘월광욕’을 낭송한다. 흡사 달빛을 타고 내려온 옛 가객의 음성을 듣는 듯했다.
김정희와 시놀이팀(이정아, 이혜정, 장순자)에서 이문재 시인의 ‘월광욕’을 낭송한다. 흡사 달빛을 타고 내려온 옛 가객의 음성을 듣는 듯했다.

빗소리에 젖은 마음을 달빛에 내다 널수만 있다면 얼마나 환한 미소를 가질까. 김정희와 시놀이팀에서 이문재 시인의 월광욕을 낭송한다. 흡사 달빛을 타고 내려온 옛 가객의 음성을 듣는 듯했다.

달빛에 마음을 내다 널고

쪼그려 앉아

마음에다 하나씩

이름을 짓는다

도둑이야!

서로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마음 달아난 몸

환한 달빛에 씻는다

이제 가난하게 살 수 있겠다

-이문재, ‘월광욕전문.

시인은 힘들고 우울한 일이 있었나 보다. 사람이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처럼 마음은 상처로 마를 날이 없다. 그런 마음에다 하나씩 /이름을 짓는다’. 그런데 그 마음들은 내게로 스며들지 못하고 서로 놀라서 도둑이야!’를 외친다. 나를 꽁꽁 얽어매던 속세의 많은 치장들. 우리는 그것을 매달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다치고 오해하고 나를 괴롭혔을까. 시인이 이제 가난하게 살 수 있겠다는 말은 속세의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살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소프라노 오능희님의 천상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어릴 적 곧잘 불렀던 ‘얼굴’이라는 곡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소프라노 오능희님의 천상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어릴 적 곧잘 불렀던 ‘얼굴’이라는 곡이다.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세상 가장 환한 달빛이 아닐까. 마침 소프라노 오능희님의 천상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어릴 적 곧잘 불렀던 얼굴이라는 곡이다. 동요인데도 노랫말에는 흥겨움보다 그리움이 잔뜩 묻어있다. 우리에게 빛나던 눈동자맴돌다 가는 얼굴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물 흐르듯 달빛 흘러가듯 그렇게 지나온 얼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빗소리와 함께 한 공연이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졌던 묵직함을 스르르 풀어놓는다. 예술이 갖는 미학은 그런 힘으로 세상을 빛나게 한다.

제주시 서쪽 방향 외도동에 위치한 외도 월대천에 비가 오지 않을 때 모습.
제주시 서쪽 방향 외도동에 위치한 외도 월대천에 비가 오지 않을 때 모습.

사회 정민자

음악 전병규·현희순(소금연주·반주)

오능희 (소프라노)

이관홍(색소폰)

시낭송 김정희와 시놀이(이정아, 이혜정, 장순자)

그림 고은

사진 허영숙

영상 김성수

음향 최현철

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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