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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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온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던 가을이 저물고 겨울 문턱으로 들어섰다. 건물 남쪽엔 그 햇살이 모여 놀고 있다. 넓은 유리에 반사된 빛, 황토색 타일이 늘어지게 희롱하며 놀다 스미는 열기, 북풍을 피해 잠시 온기를 얻으러 온 강아지들의 재롱도 훈기를 더한다. 아내는 바람 안 드는 푸근한 곳에다 작은 방석을 툭 던져 깔고 앉더니 쪽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난 그 언저리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에게 숨을 불어 넣는다. 고장 난 전화기, 벽시계, 오래되어 버릴까 망설이던 소형 금고까지. 심장이 아직 멈추지 않은 물건들이라며 살펴보지만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이다.

드라이버를 역회전하여 해체하고 신중하게 폼 잡고 수선한다. 눌러쓴 모자가 시야를 가리면 들쳐 올리고, 찬바람의 싸한 기운을 느끼면 손바닥을 머리끝에 올려 눌러 놓기를 반복했다.

가끔 내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낸 뭐라 생각할까, 손재주 좋다며 잘 한다고 할까, 아니면 더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핀잔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하는 사이, 아내는 안으로 들어가고 내 손만 바지런을 떨고 있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찰나였다. 바로 옆에 비둘기 한 마리가 떨어지더니 날개를 힘없이 파드득거린다. 부리엔 선혈이 낭자하다. 얼른 집어 들고 살펴보는데 목을 가누질 못한다. 바동대는 모양새로 보아 목이 부러진 것 같다.

내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심장의 울림만 쿵쾅댄다. 커다란 동물인 내 가슴에서 뛰는 박동보다 더 큰 진동. 그건 아직 살아있다는 표시이며 분명 살고 싶다는 분명한 의지건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누지 못하는 머리를 편안하게 받쳐주는 것뿐.

게슴츠레 뜬 눈이 점점 흐려진다. 심장의 박동도 여려져 가더니, 기어이 숨을 놓고 말았다. 또 생명을 빼앗는 죄를 지었다.

3층 건물을 근린시설로 짓다 보니 유리를 많이 사용했다. 맑은 날엔 햇빛을 반사하고 거울처럼 하늘도 구름도 담았다. 유리 속엔 새들이 날아다녔다. 날짐승 중에 함정인 걸 모르는 아둔한 놈일까, 허공이 아닌 그 공간으로 가끔 날아와 부딪는다.

죽어가는 새들을 볼 때마다 미안했지만 막을 방법이 없다. 그들의 심장이 내 손바닥 위에서 멈출 때 가슴을 때리는 죄의식을 느끼곤 했지만, 그 주검을 묻을 때면 잔뜩 찡그리는 두 얼굴의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품에 품었을 때 아비로서의 기쁨은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신생아 손목에서 느끼던 맥박, 말랑말랑한 숨골의 감촉, 아이의 왼 가슴에 귀를 대고 힘찬 생명의 펌프질 소리를 즐겼다. 규칙적인 심장의 고동 소리는 살아있다는 표시이며 건강하다는 증표기에.

한낱 보잘것없어 보이는 미물에게 서도 생명의 위대함을 보았다. 장구벌레를 전자현미경에 넣으면 커다란 심장이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운다. 힘찬 심장 박동을 보면서 살아있음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명 존중을 느꼈다.

심장이 멈추면 생체는 죽음을 맞는다. 고층 빌딩이 늘어날수록 그들에게서 빼앗는 목숨이 줄을 잇는다. 전깃줄에 날개를 부러뜨리고, 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많은 생명들….

못된 인간이 인간을, 미처 생각에 미치지 못한 인간이 금수를, 허기를 달래려는 인간이 식물을 마구 없애는 세상이다. 원치 않은 것도 있지만, 오늘도 우린 죄인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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