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도로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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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동화작가

5·16도로를 지나 서귀포로 가는 것을 좋아한다. 30여 분 남짓 끊임없이 이어지는 천연림이 좋아 즐겨 5·16도로를 탄다. 시내를 벗어나 숲을 만나면 소풍을 가는 어린 시절처럼 가슴이 설렌다. 사계절 얼굴을 달리하는 천연림을 지나면서 나무에 대한,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니 어디서부터가 한라산 영역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5·16도로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아름답다. 숲 사이로 백록담이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받쳐 서 있는 모습도 좋고, 키 큰 나무들의 발아래에서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 또한 아기자기하다. 숲터널에 들어서면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어 아쉬움을 안고 달린다. 숲을 벗어나면 서귀포 바다와 섬들이 반겨준다. 언제 보아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이 아름다운 서귀포를 바라보며 내달리는 내리막길은 절로 흥겹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횡단도로 마이크로버스를 탔다. 서귀포여중고에서 열린 청소년적십자(JRC) 정기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단원들과 함께 한라산을 넘었다. 서너 시간이 걸리던 서귀포 가는 길이 한 시간 만에 닿을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롭고, 한라산의 속살을 보며 갈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때의 감동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아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소설가 오성찬의 자전적 소설 ‘크는 산’에 제주시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했다가 배가 고파 고구마 껍질을 먹고, 어둠이 다가와 당황하던 참에 트럭을 만나 무사히 제주시로 건너온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길은 1930년대 일제가 산림개발을 목적으로 만든 임도였다고 한다. 그 길이 5·16혁명을 거쳐 김영관 지사에 의해 비포장 상태로 도로가 정비되었고, 5·16도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는 정부의 치적을 홍보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곳에 5·16이라는 이름을 붙이던 시절이었다. 지방도 제1131호선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5·16도로라는 이름에 익숙하다.

5·16도로의 건설은 제주도민에게 축복이었다. 특히 서귀읍을 중심으로 남제주군에 살던 주민들에게 5·16도로는 생명의 길이었고, 학생들에게는 은혜의 길이었다. 힘들게 동서 일주도로로 반 바퀴를 돌아가던 고통을 일시에 제거해 주었으며, 관광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출판 관계로 5·16도로 표지석을 찍으러 아라동에 다녀왔다. 5·16도로라고 쓰인 두 면 중 한쪽에 작은 소나무가 자라 글자를 가린 채 서 있었다. 5·16도로를 개명하자는 의견이 간간히 매스컴을 장식했었다. 5·16도로는 박정희 도로이며, 적폐청산을 하면서 5·16도로 명칭을 그대로 두느냐는 항의, 별 생각 없이 희귀수목을 마구잡이로 베어 만들어진 환경파괴의 도로, 군사정권의 잔재여서 도로명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실린 신문도 읽었다.

5·16도로라는 명칭은 소중한 제주역사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주도민은 5·16도로를 사랑하며, 앞으로도 꾸준하게 5·16도로를 넘어 다닐 것이다. 살아있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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