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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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전 탐라교육원장/수필가

바둑 경기가 끝난 뒤, 해당 대국의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대국자 두 사람이 처음부터 재연하는 것이 복기다. 대국자들은 경기를 치른 후 복기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복기는 강제성은 없지만, 승패의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경기의 내용을 검토 연구함으로써, 내가 잘못 두었거나 전혀 몰랐던 것을 상대방을 통해 알게 된다. 승리하거나 패하거나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게 되는 셈이다.

바둑 복기처럼 인생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어 봄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한도 많고 탈도 많던 경자(庚子)년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 벽에 달랑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노라면, 그 숱한 날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허전하고 을씨년스럽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일도 아니다. 내가 지은 업보가 아니겠는가. 그동안 기쁘거나 슬픈 일, 즐겁고 괴로웠던 일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간다.

올해는 폭염과 긴 장마 그리고 연이은 태풍으로 어느 해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희한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19 못지않게 우리의 삶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은 정치권의 싸움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이기에만 빠져 있다. 소통과 협의도 없이, 정쟁과 힘의 논리만 내세우는 갑질의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폭거만이 난무한다.

170여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은 노도와 같이 밀어붙이고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다수를 앞세워 자신들이 만든 법과 규정마저도 바꾸면서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있다. 유리할 때는 자화자찬 일색이요, 불리하거나 잘못되면 남의 탓이요, 전 정권 탓이라고 국민들을 들먹이며 회피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싸움도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경기에 심판도, 규정도 없는 듯하다. 대통령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의와 공정, 평등을 내세웠으나, 결국 공염불이다.

공수처법만 해도 그렇다. 법사위원장의 개의 선언부터 통과까지 7분 만에 일사천리 속전속결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법과 원칙, 절차도 없었다. 정당한 법이라면 시간을 두고 공론화를 거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해 뚝딱 해치우는지. 그런 내면에는 그들만의 은밀한 속셈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법보다 무서운 게 도덕적 가치와 양심이다. 이것을 저버리면 법도 무용지물이 된다. 비정상이 활개를 치고 불의만이 존재하며, 검은 것을 희다고 우격다짐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 했다. 이제 자신을 돌아볼 때다. 우리는 앞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과오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정도(正道)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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