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와 도요새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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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제주국제대학교 국제교류원특임

‘내가 입을 열어주지 않으면 너는 굶어 죽는다, 네가 입을 열지 않고 그렇게 버틴다면 너는 말라 죽을 것이다’라면서 조개와 도요새가 싸우고 있다.

둘이 싸우는 동안 어부는 조개와 도요새를 손쉽게 잡아 이득을 본다는 뜻인 ‘어부지리’는 우리가 흔히 쓰는 고사성어인데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조개와 도요새의 우둔한 싸움은 모두 멸망한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 때,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싸움은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이었다.

그로 인하여 1979년 10·26사태가 발생하였고 유신체제가 몰락하면서 민주화 사회를 갈망하던 국민들은 ‘서울의 봄’을 염원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였지만 1980년 ‘5·17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5월 18일 ‘비상계엄’에 저항하는 광주시민을 강경 진압하면서 허탈감만 남긴 채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전두환 정권의 말미인 19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이 쟁취한 ‘6·29선언’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다시 한번 ‘서울의 봄’을 염원했지만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올 수 없었다.

1987년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 후보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후보, 이른바 3김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들은 김대중, 김영삼 후보에게 단일화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대권에 대한 욕심으로 그들의 귀와 눈은 이미 멀어 있었다.

이를 예측하여 노태우 후보 진영이 기획한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 작전은 성공하였고 다시 한번 군 출신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후일, 김영삼·김대중 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각자 개인적인 목표는 달성했지만, 역사의 한 장에는 오점을 남겼다.

‘문민정부’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의 봄’을 기대했지만, 아직도 ‘한국의 봄’은 멀리 있어 보인다.

허술한 부동산정책에 의한 사회의 혼란, ‘코로나19’, 게다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신경전은 국민 분열과 짜증만을 남겼다.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은 총장의 징계와 장관의 사의로 끝났지만, 장관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면 앞으로 출범할 ‘공수처’는 과거의 어떤 기관보다 더 센(?) 역할을 하고도 남을 것 같다.

‘퇴임 후 정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니, 독재정권에서 쓰였던 궤변이다.

장관은 ‘깨시민(깨어있는 시민)들이 검찰을 감시’ 운운하며 ‘검찰개혁’을 빌미로 총장을 징계하는 혁명가(?) 역할도 하였고 검찰을 감시할 수 있는 시민이 ‘깨시민’이라는 식의 표현으로 국민을 우롱하기도 하였다.

국민은 깨어있다. 단지,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속고 있을 뿐이다.

진정, ‘깨어있는 장관, 진실한 정치인’들이 있기는 한가?

이 시국에 ‘와인파티’ 사진을 SNS에 올릴 정도의 몰상식한 정치인, 택시 기사를 폭행했던 자를 법무부 차관에 발탁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해에는 ‘코로나, 조개와 도요새’가 떠난 조용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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