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 여야 합의 통과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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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편집부국장

1999년 12월 16일 국회 본회의장.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이 법안을 표결 없이 의결하자”고 제안하자 다수 의원들이 동조했다. 반대 토론을 벌인 모 의원은 제주 출신 의원들의 설득으로 퇴장, 본회의장에 없었다. 결국 박 의장은 표결 없이 4·3특별법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15대 국회 임기 말 4·3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 소망에 여야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이제 21대 국회. 마침내 오늘(26일) 국회 본회의장에 4·3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이 무대에 선다.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4·3 희생자 위자료(보상) 지원 등 미완의 과제 해결을 눈앞에 둔 것이다.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지 73년, 4·3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이다.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과 의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된다.

4·3특별법은 1999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후 이듬해 1월 공포되면서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4·3평화공원 조성, 국가추념일 지정 등 대한민국 과거사 청산의 선례를 남겼다.

하지만 4·3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과 권리를 회복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면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은 20대 국회에 제출됐지만 배·보상 문제로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을)과 이명수 의원(국민의힘·충남 아산시갑)이 각각 발의에 나서면서 물꼬를 텄다.

이어 민주당·정부·청와대가 정부의 위자료(보상) 지원에 합의하고, 국민의힘도 수정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결국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지난 8일 수정한 대안을 의결했고, 행안위는 지난 18일 전체회의에서 위원장 대안으로 통과시켰다. 법제사법위원회도 25일 의결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에서 일하는 송재호·오영훈·위성곤 의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좌남수 도의회 의장을 비롯한 도의원, 4·3관련 단체 등 도내외의 단합된 힘도 큰 몫을 했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 현재까지 국회 앞은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피켓 시위 참여자들의 추위를 녹이는 열기로 가득했다. 이 자리에는 어머니를 잃은 9형제의 막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7남매의 어머니가 된 70대 유족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았다.

이번 전부 개정안은 종전의 17개 조문을 31개 조문으로 확대했다. 무엇보다 국가가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 위자료 등의 특별 지원을 강구하도록 했다.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 규정도 신설했다. 4·3위원회의 추가 진상조사 심의·의결, 행방불명으로 결정된 희생자의 법원 실종 선고 청구도 가능해졌다.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4·3트라우마 치유 사업을 실시하는 근거도 담았다.

한 달여 지나 4월 3일은 제73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다. 이날 추념식장을 찾게 될 정치권. 고령의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들에게 진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만장일치 통과’ 낭보를 전하길 간절히 기다려본다. 추념식 슬로건인 ‘우리의 4·3이 따뜻한 봄으로 기억될 때까지’가 더욱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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