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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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오전 우체국은 늘 북새통이다. 거의 외지 자손들에게 보내는 것들이다. 김치며 생선, 밑반찬과 돼지고기에 토속 음식 재료까지. 박스가 터질 듯 싸 보내는 것을 볼 때마다, 내 마음 보따리와 같은 심정이다. 귀한 자손이 먹을 건데 제일 좋고 맛있는 것만 골라 보낸다며 등짐을 내리는 허리 굽은 여인. 제주 흑돼지고기가 맛있다는 손자들이 눈에 밟힌다.

여자가 아이를 낳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슴 풀어 젖 물리는 것으로 어미의 역할이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관계는, 평생 먹는 걸 배제하고 어머니를 생각할 수 없게 한다. 모정은 먹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자식을 떠올리는 게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엄마와 아이와의 애착 관계는 젖을 먹이면서 형성된다고 한다. 첫 아이 낳고 젖 먹이는 일은 여간 쑥스럽고 어색한 게 아니었다. 식구들 앞에서 돌아앉아 어설프게 젖을 물리며 내려다본 아이. 눈도 뜨지 못했으면서 오직 본능으로 힘차게 빠는 게 대견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아들과 통화 할 때마다, 잘 먹고 지내는지 묻는 게 습관처럼 됐다. 한국식품도 구하기 쉽다며 걱정하지 말라 한다.

하긴 젊은이들의 입맛은 서구화돼, 크게 고생스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이곤 한다. 딸은 어찌나 까다로웠던지. 이유식은 도리질하고 젖만 파고들었다. 예민했을 어린아이가 낯선 맛에 거부감이 있었을 시기다. 맛 들이기를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첫맛은 혀가 기억하는 평생 내 어머니만의 미각으로 남게 된다.

요즈음에는 굶는 사람이 드물다. 과거 보릿고개 시절에 태어난 사람은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었다. 오죽하면 그 시절을 살았던 여자는 걸핏하면 잘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했다는, 특히 배곯던 자식에게 미안해 한이 맺힌다고 울먹일까. 마치 당신만의 잘못인 양 목이 멘다. 가슴 저미는 말을 들을 때면, 평생 여자가 짊어져야 할 짐이 얼마나 큰 멍에인가를 생각게 한다.

자식에게서 안부 전화라도 오면, 으레 끼니는 잘 챙기고 있는지를 묻는 게 대부분 어머니의 인사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딸은 질색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실은 나날이 성장해 가는 손자들의 근황을, 거울 속처럼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을 대신한 말이다.

유난히 먹는 일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단순히 그 뜻만은 아니다. 끼니만 잘 챙겨도 집안이 평안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밥 먹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누구나 어머니가 손으로 주물러 만든 음식에 목말라 한다. 타인에겐 특별한 것도 없는 평범한 맛인데, 그 속에 어머니와 자식을 잇는 원초적 교감이 스미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어머니의 촉수는 늘 자식에게 향할 수밖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회귀본능이다. 병치레로 고생하는 이들이 그리워하는 것도 어머니의 밥상이다. 병을 훌훌 털고 금방 일어설 것처럼 그 음식은 명약이나 다름없다. 후일 자식들이 내가 만든 음식 중에 무엇을 제일 그리워할까. 종종 생각하게 된다. “밥은 먹었니?” 어머니의 평범한 인사말은 사랑, 그 이상의 의미가 녹아 있다. 가정의 달이다. 요즈음처럼 내왕이 수월치 못 한때 깊이 새겨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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