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는 내리사랑…영원한 내 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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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계춘할망
제93회 오스카 위너 윤여정 주연
제주 배경으로 제작된 가족 영화
해녀와 그림 좋아하는 손녀 이야기
유쾌한 웃음·따뜻함 감동 전해줘
유채꽃밭 등 수려한 영상미 뽐내
제주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계춘할망’ 스틸컷. 2016년 개봉한 이 작품은 해녀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 영화다.
제주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계춘할망’ 스틸컷. 2016년 개봉한 이 작품은 해녀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 영화다.

한눈팔지 말라이. 닌 장남이난 꼭 제주 비바리영 결혼해사 헌다.’

육지로 대학 보낼 때 아버지의 신신당부였는데 졸업하고 직장 다니면서 이 말씀을 어기게 됐다. 육지 여성을 만났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기 때문이다. 고향에 함께 가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파트너 혼자만 제주에 보내게 됐다. 제주가 처음인 그녀 입장에선 몹시 황당하고 내키지 않는 여정이고, 고향 부모님 또한 원치 않는 육지 처녀를 며느리감이라고 혼자만 내려보내는 아들이 참으로 야속했을 터이다. 그러나 양측은 34일 동안 함께 지내며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를 맺는 걸로 원만하게 합의를 본 모양이다. 미래의 아내 혼자 제주로 내려 보낸 후 내내 찜찜하고 그녀에게 창피스러웠던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똥돼지를 키우는 고향 집통시였다. 며칠 후 그녀가 올라오고 나서도 화장실이 어땠는지 궁금은 했지만 너무 미안하고 민망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최근에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오래전 이 일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구좌읍 평대리 해안에 사는 계춘이 할망이었다. 평생 물질로 살아온 해녀다. 아들이 몇 년 전 죽었고 며느리는 육지로 도망가 버렸기에 혼자 남겨진 손녀딸을 맡아 금과옥조로 키운다. 어느 새벽에 혼자 마당에 나가 화장실 보던 손녀가 울며 할망을 찾는다. ‘통시에 있던도새기놈이 받아먹는 양이 적다고 심술을 부렸거나 만만하다고 어린 애를 놀려 먹은 모양이다. 황급히 뛰쳐나온 할망이 막대기를 들고 이리 나와라 이놈이 새끼야하며 돼지를 쫒아보지만 만만치가 않다. 2016년에 개봉된 영화계춘할망초반의 풍경이다.

이때만 해도 이 영화에서 제주 할망으로 분한 배우 윤여정 씨가 몇 년 후 미국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줄은 누구도 짐작 못했을 것이다. 지난 4 25일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씨가 대배우 브래드 피트의 호명을 받고 나가 수상 소감을 밝히는 5분은 우리나라 영화 팬들에겐 적지 않은 감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윤여정 씨는 제주에 머물며계춘할망역할과 연기를 잘 해냈던 토양 덕택에, 5년 후 미국 영화미나리에 출연해서도 비슷한 역할을 탁월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걸로 보인다.

영화 속 홍계춘 할망은 손녀딸 혜지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재래시장에서 손녀를 잃어버렸다. 김포공항 인근의 북적거리는 한 전통시장에서 손녀의 새 옷을 고르다 잠시 방심한 것이다. 호기심 많은 다섯 살 아이도 처음 접하는 서울 분위기에 많이 들떠 있다가 잠시 할망 손을 놓았으리라. 끝내 손녀딸을 못 찾고 혼자만 제주로 돌아온 할망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12년 세월이 흘렀다. 기적처럼 손녀가 나타난다. 그러나 예전 같지가 않다. 어릴 적 나고 자란 고향집인데도 적응을 잘 못하는 눈치이고,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 역시 영 살갑지가 않다. 불량소녀로 성장한 듯 동네 사람들 말로는 숨어서 담배 피우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서울에서 고아처럼 혼자 살았을 테니 그럴 수 있다고 할망은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손녀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결말로 향해간다.

제주를 배경으로 하면서 제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예전의 영화들에 비한다면 출연배우들의 진용은 막강한 편이다. 이번에 받은 오스카 상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윤여정 씨는 물론 데뷔 10여 년 만에 이미 스타 자리에 올라있는 김고은 씨의 연기력 또한 말해 뭐할까. 거기에 김희원 양익준 류준열 최민호 등 연기와 지명도 면에서 쟁쟁한 조연 배우들이 영상과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구성해준다.

후반 군데군데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 분위기도 등장하지만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는다. 따뜻한 감동을 선사해주는 전형적인 가족 영화요 성장 영화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으라.” 혜지가 노심초사 숨기고 있는 비밀을 어렴풋이 간파한 할망이 조용히 다가와 해주는 응원의 이 말은, 열여덟살 사춘기 소녀의 인생에 얼마나 천금 같은 보약이 될 것인가?

하늘이 넓어, 바다가 넓어?” 여섯살 손녀가 할망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바다가 하늘을 품고 있기에 바다가 더 넓다라는 생각은 성년이 된 혜지가 저절로 알아진 답이다.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고백이란 제목의 그림은 하늘보다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여자 아이가 할머니(또는 죽은 엄마) 양손을 붙잡고 바닷속을 헤엄쳐 밝은 햇살로 향해가는 장면이다. 혜지가 할망에게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고백하는 이 그림을 펼쳐놓고 계춘할망이 오열하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할망이 찾는 혜지가 될 수 없는 자신의 아픔, 그리고 자신도 할망에게 또 다른 손녀딸이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화의 주 무대는 제주 동북 지역 구좌읍 평대리와 하도리 마을이지만 중산간 오름들과 서귀올레시장, 소섬 우도와 성산일출봉 등 제주의 다양한 풍광들이 싱그럽게 화면에 실린다. 영화 속 동선(動線)을 따라 촬영지 현장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외지인들에게는 추억에 남을 제주 테마여행이 될 수 있다.

마을 해녀들이 제주 민요를 구성지게 부르며 물질하러 가는 오프닝 장면의 하도리 해변, 지금은빈 하루란 이름의 민박집으로 변해 있는 평대리의 계춘할망네 집, 그 집 바로 옆에 혜지가 서울서 온 아빠와 만나던 카페바당봉봉’, 혜지가 혼자 거닐던 하도리 별방진과 동네 해녀들이 경쾌하게 에어로빅을 추던 별방진 앞 정자 광장, 혜지가 남자친구와 자전거 타고 가던 월정리 인근 행원 풍력발전단지 등은 모두 올레 20코스와 21코스에 위치한다. 이 구간을 걷는 올레꾼이라면 저절로 만나게 되는 곳들이다. 당연히, 모르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고 미리 안다면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한층 뜻깊은 여정이 되는 것이다.

계춘할망이 신세한탄을 하며 고사리를 꺾던 곳과 혜지가 남자친구와 음악을 듣던 곳은 둘 다 사려니숲이다. 절물휴양림의 거대한 나무숲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혜지가 미술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송당리 아부오름 장면도 제주 중산간을 대표하는 모습일 듯하다. 스승과 제자가 말발굽 모양의 분화구 너머 바라다보는 풍광이 그윽하기 그지없다. 영화 초반에 안덕면 단산(또는 바굼지오름)의 봉우리 두 개를 배경으로 한 유채꽃밭과 결말 부분에 멀리 형제섬과 송악산이 보이는 산방산 아래 사계리 유채꽃밭 정경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고 아름답다.

별로 기대를 안 하고 고향에 대한 약간의 의무감으로 이 영화를 골랐는데 초반부터 이어지는 아름답고 수려한 영상에 화들짝 놀랐다. 바닷가 마을의 평화로움과 해녀들이 숨비소리 내며물질하는 모습 등이 유채꽃 만발한 들판과 그 뒤로 펼쳐지는 중산간 오름들 자태와 어우러지며 심금을 울렸다. 제주사람들로선 20여 년 전 할망 어멍들이 살아갔던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저려올 수도 있고, 외지인들에게는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확인하는 랜선 여행이 될 것이다. 2012년 개봉된지슬이 제주의아픔을 가장 잘 담아낸 영화라면, 2016년 개봉된계춘할망은 제주의자연을 가장 잘 담아낸 영화로 남겨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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