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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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화수분이라 한다. 물건을 담아두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는 요술 단지다. 침이 도는 꿀단지가 떠오르지만 화수분에 비할까, 얻고자 하는 게 다 나온다는데.

우리 설화에도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다는 나무꾼 얘기는 있지만, 이건 진시황 때, ‘하수분河水盆’에서 유래했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 10만 명을 사역해 황하수를 길어다 구리 동이를 채우게 했단다. 그 동이가 얼마나 컸던지 물을 가득 채워 놓았더니, 써도 써도 바닥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하수를 채운 동이’라 ‘河水盆’인데, 무얼 넣어두면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 그릇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지금 세상에 실재한다면 큰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말짱 허구인데도, 설화라는 신비성 때문인지, 말로 듣고 상상만 해도 나쁘진 않다. 고단한 삶, 무미건조한 일상에 웬 신통한 일이 있을까만 ‘된다’는 한 가닥 긍정의 힘이 느껴지기도 하니까.

가까이서 문학을 함께해 온 한 P 여류수필가가 한번은, “매번 글을 대하다 보니 선생님은 화수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라 했다.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 주고받는 메일에서 한 얘기로 기억된다. 짐작에, 5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안경 너머 세상’을 올리는 걸 보고 한 말 같다. 한 달이면 네 번이니 소재 빈곤에 허덕이는 건 맞지만, 어찌어찌 이어 온다.

또 얼마 전엔 서울 정은출판에서 기획도서로 내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 일일일>을 편집하던 기획실장으로부터 책의 프롤로그를 새로 썼으면 하는 주문을 받았다. 애초 써 보낸 것은 에필로그로 옮겨 싣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밤새 써 바로 뒷날 보냈더니, 조금 놀랐을까. 여성적 감수성도 거들었을 것인데, 나더러 한 말, “선생님은 화수분 같아요. 하루 사이에 이렇게 길게 쓰셨으니….”

시집과 수필집을 냈다지만 아직 스무 권에 차지 못한다. 등단 30년이 목전이니 좀 쓴 편이긴 한가. 그래도 나는 늘 채우지 못한 허기 속이다. 결핍인지 궁색인지 무능인지 아직도 분간이 어렵다. 쓴다면서 오늘도 내 것 아닌 듯 낯설기만 한 문인이란 가슴에 달기 부끄러운 이 이름표.

나는 누구처럼 자신의 생애를 소진하며 문학을 해오지 못했다.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겠다. 내게 묻는다. 나는 내가 써 온 수필과 시에 내놓을 만한 ‘대표작’이 있나. 다 그만그만한 것들, 생명력이 별로라 내가 생을 다하는 날 같이 세상을 하직하면 끝날 것들이 아닌가. 당연히 입에 빗장을 채운 채 묵묵부답이다.

글을 안 쓰면 시간이 가지 않고 멈춰 버린다. 나는 요즘 삶을 글쓰기에 의탁한 형국이다. 코로나19 시국에 집콕해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뉴월 갈증에 벌컥벌컥 맹물 들이켜듯 그냥 즐거워 글을 쓰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 나는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 화수분은 귀중한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그릇 아닌가.

내 글이 재물이 아닌 것은 물론이거니와, 줄줄 써지기는커녕 한 줄 쓰다 먼 산 쳐다보다 한 줄, 떠가는 구름 좇다 한 줄, 파르르 꽃 피는 찰나에 한 줄,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

칭찬을 들으면 엔도르핀이 솟긴 하나, 그때뿐 금세 머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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