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看書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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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목멱산(남산의 옛 이름) 아래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어눌해 말을 잘하지 못하고,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해 세상 물정을 잘 알지 못했다. 바둑이나 장기는 더군다나 알지 못했다. 이를 두고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려 않고, 칭찬에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으며 오로지 책만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나 더위, 배고픔이나 아픈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손에서 고서를 놓지 않았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으나 동서 남쪽으로 창이 있어 볕이 드는 방향을 따라 밝은 곳에서 책을 보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었는데. 집안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 기이한 책을 구한 줄을 알았다.

자미(子美 : 두보의 字)의 5언율시를 좋아해, 병을 얻어 끙끙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렸다. 심오한 뜻을 깨치면 매우 기뻐서 일어나 왔다 갔다 걸어 다녔는데, 그 소리가 마치 갈까마귀가 우짖는 듯했다. 혹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지도록 쳐다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듯이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니, 사람들은 그를 두고 ‘간서치’, 곧 책만 보는 바보라고 했다. 그런 놀림조차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의 전기를 지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이에 붓을 들어 자신에 관한 일을 써 『간서치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름과 성은 기록하지 않았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근본이 서자 출신으로 큰 벼슬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경서(經書)와 사서(四書)에서 기문이서(奇文異書)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하고 문장이 출중했다. 그가 즐겨 사용한 호 청장(靑莊)은 맑은 시냇가에 사는 백로(해오라기)를 뜻한다. 맑고 깨끗한 물가에 붙박이처럼 서 있다가 다가오는 먹이만을 먹고 사는 청렴결백한 새다.

그는 살던 집 근처 남산을 오르내리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많이 썼다. 단아한 모습, 맑고 빼어난 외관처럼 행동거지에 일정한 법도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이욕(利慾)이나 잡기(雜技)로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가난해서 책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굶주림 속에서도 수만 권의 책을 읽고 또 수백 권을 베꼈다. 오직 책을 읽는 일만을 천명으로 여겼다.

그의 저술총서 『청장관전서』에 실린 사실(史實)에 대한 고증, 역사와 지리, 초목과 곤충, 물고기에 이르는 그의 지적 편력은 실로 방대하다. 그래서 그는 박학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실학자 이서구(李書九)는 “밖으로는 쌀쌀한 것 같으나 안으로 수양을 쌓아, 이세(利勢)에 흔들리거나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인물”이라 했다. 조선조 이덕무의 책 읽는 소리는 임금이 아꼈다고 한다.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분이 국어사전을 베낀다고 한다. 등단엔 뜻이 없어 보인다. 사전을 베낀다니, 지독한 나라말 사랑인가. 책만 읽으며 살았던 이덕무가 떠오른다.

책을 읽는 데 열중하기도 어렵지만 많은 책을 갖기도 힘들다. 어떤 작가는 집에 책이 만 권이라 구석구석 쌓인 게 책이었다 한다. 그래도 무슨 책이 어디 놓였는지 안단다. 친구가 왔다 갔는데, 호주머니에 넣을 만한 책이 없어졌다. “안 가져갔다,” 말하지 못한다 한다.

손에서 놓지 않든, 수만 권을 가졌든, 사전을 베끼든, 이덕무의 후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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