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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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장마가 물러가고 무더위가 심해질수록 피서의 대명사인 산과 바다의 진면목은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한들 어디 이에 비할까. 평소 바다를 앞마당 삼아 살아온 필자는 틈나는 대로 바닷가를 거니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따가운 햇살을 가려줄 그 무엇도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폭넓게 다가오는 탁 트인 푸르름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좋기만 하다. 멍하니 바라보는 수평선은 또 어떠한가. 안온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잡념을 쓸어 가면 가슴이 한껏 시원해진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가 하면, 시인이 반길 만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잔뜩 움츠러든 어깨가 활짝 펴진다.

그런데 물이 빠진 갯바위 곳곳엔 적잖이 안타까움도 내려앉아 있다. 마치 설계(雪溪)의 흔적마냥 조간대(潮間帶) 곳곳에 백화(白化)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갯녹음이다. 일면 그럴 듯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기실 전혀 반갑지 않은 아주 위험한 존재다. 연안에 널려 있는 암반에서 자라던 해조류가 사라진 자리에 산호의 일종인 무절석회조류가 붙어 자라다가 폐사하여 하얗게 변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해조류가 사라지면 이를 근간으로 살아가던 어패류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황폐화가 지속되면 종국엔 울먹이는 텅 빈 갯바위를 달래주는 바닷물만 들락거리는 바다 사막이 되어버리고 만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갯녹음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 해수의 산성화, 연안의 무분별한 개발, 육상으로부터의 오염물질 다량 유입 등을 주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부터 갯녹음 현상이 뚜렷이 관측되었다는 점은 산업화에 따른 인위적 요소가 상당 부분 작용했음을 말해 준다.

숨을 참으며 열심히 물질을 해도 건질 게 별로 없어 해마다 무리를 지어 타지로 원정 물질을 떠난다는 해녀들의 넋두리에서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해마다 인공 어초 투하, 종패 살포와 치어 방류 등 일명 바다숲(海中林)’ 조성 사업을 펼치고 있고, 마을 어촌계별로 갯닦기 작업을 행하기도 하지만 급한 숨을 헐떡거리는 바다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좀 더 획기적 투자와 적극적 환경보호를 통해 코발트빛을 머금은 청정한 풍요가 넘실대는 예전의 제주바다를 기필코 되살려내야 한다. 이는 곧 늘 천혜의 자연을 곁에 두고 사는 우리의 책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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