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최고의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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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나이가 들어가니 오래전 일들이 간간이 떠오르곤 한다. 가족 앞에서 풀 수 없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한 밤중임에도 불쑥 친구의 집을 찾아갔던 일들이다. 당시에는 농촌에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눌 마땅한 곳도 없었고 그렇게 찾아가도 흉보지 않았던 친구가 몇몇 있었다. 식구가 없는 은밀한 골방을 찾아 들어서는 이튿날이면 생각도 나지 않을 쓸데없는 말들을 한 잔 술을 곁들이며 밤새도록 지껄여댔었다. 날이 새고 나면 속은 쓰리지만 맘속의 쓰린 감정들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종종 생기지만 그렇다고 한밤중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는 없는 것 같다. 시대에 따라 삶의 양상이 변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허투루 산 탓이 크다.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친구 한두 명쯤 곁에 두고 싶다.

인간은 약한 존재라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모르고 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의 나약함, 역부족인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종교에 의지해 보기도 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도 만들어 본다. 친목, 동아리, 갑장, 동문, 동향… 온갖 인연을 들추어가며 내 주위에 우군을 포진시켜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 의도대로 만양 좋은 관계일 수만도 없다. 가족들마저 때로는 부담이 되는 게 인생살이다.

요즘은 부부가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부부의 연은 사랑과 믿음을 전제로 시작된다. 그렇지만 사랑은 움직이는 것, 변하는 것이다. 더구나 혼자 사는 것도 어려운데 함께 사는 것은 많은 인고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살아갈수록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부부의 삶이다.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긴 과정을 거쳐야 노년에 이를 수 있다. 수많은 부부들이 그 긴 고난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서 갈라선다. 그런 갈등과 다툼의 과정이 없이 시종일관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말은 십중팔구 거짓말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양보나 순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는 것 또한 부부의 관계다. 겉으로는 사이가 좋아 보여도 그 이면은 정반대일 수도 있다. 결혼 전 함께 산 경험이 없으니 오랜 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옥신각신하며 천의 얼굴로 변신도 해보고 엎치락뒤치락 기 싸움도 거쳐야 한다. 그러기에 사랑으로 충만해 보이는 부부는 많아도 실제로 그런 부부는 드물다. 오랫동안 인내하고 타협하며 양보와 희생의 필요성을 깨닫고 실천해야 비로소 진정한 부부가 된다.

나무가 꽃과 열매를 맺으며 아름답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의 덕이다. 뿌리를 통해 충분한 수분과 양분이 줄기로 보내져야 성장과 결실이 가능하다. 뿌리의 역할이 잠시만 멈춰도 나무는 살아남지 못한다. 부부사이에도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하려면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한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양분을 끊임없이 공급해야 한다. 부부의 백년해로는 고난으로 잦은 생의 텍스타일이다. 지난한 과정을 완주한 생의 최고의 보상이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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